[김주용 목사의 스티그마] 터닝포인트, 온전함으로 돌아가기

입력 2025-10-23 03:14

제럴드 포드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사람들이 포드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비교했다. ‘링컨은 훌륭한데 왜 포드는 이것밖에 안 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포드는 “나는 링컨이 아닙니다. 단지 포드입니다(I’m not Lincoln, I’m only Ford.)”라고 답했다. 이것은 ‘나는 부자들만 타는 링컨 차가 아니라 누구나 탈 수 있는 포드 자동차다’라는 뜻이었다. 이 한마디로 그는 대중의 호응을 얻었고 미국의 제38대 대통령이 됐다.

본래 내 모습이 가장 큰 힘이 있다. 온전함(Integrity)은 ‘전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상태를 두고 온전함이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인간의 온전함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창 1:27~28)에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해야 하는 지명된(Appointed) 삶을 살게 됐다. 그러나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하나님께 실망을 줬고(Disappointed)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쫓겨나는(Disappointed) 존재가 됐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상실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한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보내셔서 다시 인간의 온전함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것이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예수의 사건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을 실망시킨 인류가 본연의 자리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곧 예수를 믿는 것은 터닝포인트(Turningpoint)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장 완전했던 때는 원래 있었던 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었던 인간이 자유롭게 예배하고 찬양하며 모든 피조물과 복을 누리던 에덴동산, 사자가 어린 양과 뛰놀고 독사굴에 어린아이가 손을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아름다운 관계가 이뤄지는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로 터닝포인트와 같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508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온전했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장 먼저는 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고 둘째는 율법과 공로로 퇴색된 성도의 신앙이 오직 믿음과 은혜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이 뜻이 개혁의 운동으로 이어져 현재의 개혁교회를 이뤘다.

우리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온전함의 상태를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받은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온전한 교회와 신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고 말했다. 큰 돌덩이 안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언젠가 그 돌은 멋진 조각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각하려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리석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그대로 남겨둔 채 필요 없는 것들을 쪼아내고 잘라낸 것뿐이다.

이것이 터닝포인트가 돼야 하는 한국교회에 필요한 개혁이다. 다른 곳으로 되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 돌아가고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웠던 창조의 세계로 되돌아가려는 교회가 될 때 세상이 또다시 요구하는 종교개혁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라틴어다.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