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탑 창 너머] 별점 나라의 국민

입력 2025-10-25 00:32

관제탑에서 보는 인천공항의 풍경은 늘 시끌벅적하다. 출발하고 도착하는 비행기 여러 대가 섞이다 보니 아직도 관제하면서 비행기끼리 순서를 정하는 게 고민된다. 출발하는 비행기가 후방 견인 후 언제 출발할지 정확히 알 수 없어 계류장 관제 업무는 순서와 방식을 정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일반적으로 관제사는 비행기가 이륙한 뒤 하늘에서 경로가 겹치지 않도록 항로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출발 항공기의 순서를 조정한다. 비행기의 순서를 정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업무인 동시에 효율성을 중시한 정시 출발이라는 100점짜리 성과를 위한 노력이다.

운항 안전이라는 복잡한 가치를 ‘정시 출발’이라는 단일 지표로 축소하려는 압박은 비단 관제탑 안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일상 전반에서도 모든 것에 점수를 부여하고 순위를 매기려는 경향이 있다. 온라인에서 작성한 관제사 에세이 중 인천공항 맛집을 소개하는 글이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먹는 문제는 모두에게 중요한 화두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사람들이 맛 그 자체보다는 별점 5점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당을 검색해서 얻는 포털사이트의 별점과 리뷰만으로 맛을 예단하곤 한다. 배달음식점 선택 시 소비자의 94%가 리뷰를 참고할 만큼 수치화된 평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문제는 디지털 플랫폼이 맛의 복잡성을 별 다섯 개라는 단일 지표로 획일화하고 이 수치를 시스템적으로 강요할 때 발생한다. 수많은 리뷰와 별 다섯 개는 맛집의 증거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낸 압박의 결과다. 이러한 압박은 식당 운영자를 광고성 리뷰 구매 유혹에 쉽게 노출해 평가의 진위를 의심하게 만든다.

왜 우리는 높은 평가에 집착하는 걸까. 어릴 때부터 성적과 등수로 성공 여부를 평가받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재단하려는 습관이 있다. 더 넓은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에서 경쟁을 통한 성과가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경제 주요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치열하게 노력해 오는 동안 세계 랭킹을 곧 성공의 지표로 간주하곤 했다. 여전히 매체는 범지구적인 소식을 보도할 때 세계 몇 위, 아시아 몇 위 등 순위를 중요하게 표시한다. 항공에서도 마찬가지다. 항공사와 공항이 ‘서비스 평가 1위’를 앞다퉈 알리는 것도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분야를 막론하고 최우등이라는 성과만을 위해 몰아붙이는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 플랫폼이 가세하며 상황은 더 가속화됐다. 모든 정보를 순위, 별점, ‘좋아요’ 수로만 표시해 사람들에게 객관화된 성과를 강요한다.

끝없이 경쟁하는 사회의 뒤편에는 지쳐가는 사람들이 있다. 심화한 경쟁사회는 초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이며,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다. 국가데이터처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아동과 청소년의 자살률이 매년 상승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아이들은 입시 경쟁에서부터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수까지 모든 것을 점수로 환원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평가받는다. 가치가 없으면 실패한 인생이 된다. 청소년 학업 성취도 평가 세계 1위 나라가 아닌 청소년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오늘날 한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영향력을 갖춘 나라다. K팝, 식문화, 한류 콘텐츠 등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아 오랜 시간 선조들이 꿈꾸었던 ‘높은 문화의 힘’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우리 국민이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다는 점은 아쉽다.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불행한 것은 아닐까.

부족함은 실제보다 비교 속에서 커진다. 음식점의 맛을 별 다섯 개로 획일화하듯, 재산과 학벌을 비교하고 수저론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인간의 가치 자체를 서열화하고 있다. 결국 최고라는 단 하나의 성과만을 위해 모든 것을 몰아붙이는 평가 중독이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획일화된 점수표는 인생의 복잡성과 고유성을 담아낼 수 없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세계 1위 자리가 아니라 숫자가 담아내지 못하는 행복의 정점이다. 타인의 별점을 거부하고 스스로 설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삶을 일궈야 한다.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세상이 아닌 존중하고 인정받는 분위기가 조금씩 자리하길 바란다.

민이정 인천국제공항공사 관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