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막힌 물은 결국 썩는다

입력 2025-10-23 00:32

물이 괴어 있는 곳을 못이라고 한다. 보통 수심이 얕다. 연꽃이 있는 못을 연못이라 부른다. 수심이 깊은 못은 호수다. 물이 깊지 않고 수중식물이 무성하면 늪, 하천이나 골짜기의 물을 제방 등으로 막아 모아두면 저수지라고 한다. 자연 상태의 못과 호수, 늪은 잘 썩지 않는다. 어디론가 흐르면서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다. 인공 못이나 저수지라도 물꼬를 터주면 깨끗한 물을 유지할 수 있다. 경복궁 경회루 연못을 비롯한 예전 인공 못과 저수지는 입수량에 맞춰 흘러가게 설계돼 있다. 연꽃을 심는 건 물 흐름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대비해 바닥을 안정시키고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물을 아예 막아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수생식물이 있더라도 물은 썩고, 주변에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흐르는 물도 썩는 경우가 있다. 인위적 오염 유기물 유입이 가장 큰 원인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고인 상태로 안주하면 썩는다. 관성에 젖어 있거나 자리에 연연하려고만 하면 병들기 시작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거부하는 조직은 도태된다. 회사라는 조직은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기에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지 않아 없어진 회사는 많다.

정부 조직은 안정과 연속성을 기반으로 한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변화하지 않는다고 없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안정은 부패로 이어지기 쉽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행정부 공무원 징계자는 2023년과 2024년 모두 2000명을 넘어섰다. 품위유지의무 위반이 가장 많고, 성실의무 위반이 그다음이다. 성비위와 음주운전 등으로 품위유지를, 직무유기 및 태만 등으로 성실의무를 위반했다. 최근 5년간 부과된 징계부가금의 72%는 미납된 상태다. 총 30억8000만원에 달한다. 기본과 기강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잠잠하다 싶으면 터져 나오는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특혜 제공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이해관계자들이 결탁해 공공의 이익보다 사적 이익을 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걸리지 않아 모를 뿐 개발, 공사, 납품 과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혹 내부 감사에 걸리더라도 처벌은 약하다. 한솥밥 먹는 사람끼리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눈감아 주기도 한다. 오히려 내부고발자가 불이익 상황을 겪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썩은 물은 주변 깨끗한 물을 금세 썩게 만든다.

자리에 연연하다 보니 혁신을 말하면서도 변화는 꺼리고, 안전한 침묵을 택한다. 개선을 제안하면 ‘괜히 일 벌이지 말라’는 말이 돌아온다. 젊은 세대가 공직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다. 능력보다 연차나 관행이 우선되면 혁신은커녕 개선도 할 수 없다. 혁신 관련 위원회나 각종 특별부서를 운영해도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스스로 혁신 대상이라 실효성 없는 개선안만 내놓아서다. 반면 ‘성과평가가 연공보다 우선’이라는 규정을 도입한 지자체는 내부 분위기가 바뀌었다. 많은 공무원이 혁신 과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권한에 따른 책임도 명확해야 한다. 지금 진행 중인 국정감사장에서 보고받지 않아 모른다거나, 수많은 결재서류 내용을 어떻게 다 아냐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거나, 실무 절차도 대답 못해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이는 실·국장급 이상 공무원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책임 회피는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공직은 권력이 아니라 봉사다. 국회의원이든 장·차관이든 주무관이든 법관이든 모두 봉사자다. 헌법 제7조 1항이 형식적인 구호로만 남는 이유는 ‘봉사’를 생계와 권한 유지의 수단으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못물이 건강하면 어쩌다 오염된 유기물이 들어오더라도 스스로 회복한다. 정화 기능을 못하는 고인 물은 썩기 전에 퍼내 버리고 바닥과 구조를 다시 설계한 후 새 물로 바꿔야 한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