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이진숙·조국 공통점은 권력의 피해자라며 입지 키워
자신의 피해 호소하는 행위가 도덕적 우월성 확보하는 수단
피해를 도덕의 척도 삼지 말고 대안 추구하는 노력 존중해야
자신의 피해 호소하는 행위가 도덕적 우월성 확보하는 수단
피해를 도덕의 척도 삼지 말고 대안 추구하는 노력 존중해야
온 나라가 피해자임을 자처하며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대중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통해 도덕적 우위와 함께 그 도덕적 우위를 기반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피해자 호소가 전략적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정권 교체 후 전 정권 인사에 대한 찍어내기 논란 속에서 서로가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해 공방을 벌였다.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 또한 자녀 입시 관련 비리로 징역을 살다 특사로 출소한 자신이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과 권력 남용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민주화 이후 오랜 기간 기득권을 유지해온 운동권 세력 역시 과거에 피해자로서 형성된 정체성에 기반을 둔 도덕적 우위를 아직까지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법치주의가 확립되기 이전 전근대사회에서는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면 당사자 간 대결이나 보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법치주의가 확립된 근대사회부터는 분쟁이 발생하면 개인의 내재적 가치에 대한 존중에 기반을 둔 법제도의 틀 속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SNS가 확산되면서 법제도의 틀 속에서 당사자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SNS를 통해 자신이 피해자임을 호소하면서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상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한다. 그리고 다수에 의해 형성된 여론은 사법적 판단에도 영향을 준다. 더 나아가 피해자의 위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정의하고 피해자는 선이고 가해자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틀 속에서 자신의 이념을 절대적 선으로 여기며 도덕적 우위를 기반으로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근대사회 이후 형성된 법치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 질서의 퇴보를 의미한다.
니체는 저서 ‘도덕의 계보’에서 ‘노예의 도덕’이란 개념을 제시하며, 약자들이 자신의 열등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강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선으로 미화하는 현상을 비판했다. 그는 도덕이 강자들의 자율성에서 비롯된 ‘주인의 도덕’에서 시작됐지만, 강자에 대한 약자들의 원한에 의해 가치가 전도됐다고 봤다. 어쩌면 니체가 개념화한 ‘가치의 전도’가 현재 재현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는 행위가 곧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고, 가해자로 지목된 상대는 무조건적인 비난을 받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수동적인 행동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피해자가 선이라는 인식과 함께 피해를 낳는 주변 환경은 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의 문제나 실패를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서 결국 개인의 자유의지를 잃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피해에만 몰입한 나머지 타인의 피해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마저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회는 감정적 갈등의 장이 되고, 사회적 자본은 훼손되고 말 것이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고수익 취업을 미끼로 청년들을 유인해 감금하고 불법 행위를 강요하는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해외로 나간 청년들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현실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지적과 함께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 프레임에 갇혀 이 시대 젊은이들이 겪는 모든 문제와 좌절을 사회의 구조 탓으로 돌리고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대한 문제를 간과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사회 구성원이 현재 처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피해자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옳다는 분위기 속에서는 지속적으로 피해자 호소인만 양산될 수 있다. 진정 필요한 것은 가해자를 찾아내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외부에서 주어진 도덕적 기준에 의한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자문해야 한다. 피해의 크기를 도덕의 척도로 삼는 사회인지, 아니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안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을 존중하는 사회인지.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