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나라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도도부현(都道府縣)이란 행정구역 체계를 갖고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중앙집권을 강화하며 부(府)와 현(縣)을 전국에 설치했는데, 늦게 개척한 홋카이도만 옛 행정구역인 도(道)로 남았고, 부로 분류한 대도시 3곳(도쿄·오사카·교토) 중 수도인 도쿄를 1943년 도(都)로 승격해 1도·1도·2부·43현이 됐다. 간토 지방의 도쿄는 특별시 격인 도인데, 오사카는 부에 머문 행정 체계는 간사이 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 왔다.
간사이는 근대화 이전 일본의 중심지였다. 오랜 수도인 교토에 천황이, 상업이 번창한 오사카에 돈이 있었다. 1896년 메이지 정부가 수도를 도쿄로 옮기며 간사이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일본의 정신은 교토에, 돈은 오사카에 있지만, 권력은 도쿄에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이 회자했다. 그래도 1930년대까지 오사카는 ‘동양의 맨체스터’라 불리며 산업화 거점 역할을 했는데, 패전 후 복구 과정에서 국가 기능이 도쿄에 집중돼 박탈감이 커졌다.
“간사이 목소리는 도쿄에 닿지 않는다”는 불만과 “도쿄가 머리라면 오사카는 일본의 심장”이란 자부심을 동력 삼아 2010년대 일본유신회란 정당이 등장했다. 유신(維新)은 개혁을 뜻한다. “도쿄 중심의 일본을 오사카에서 재설계하자” “도쿄가 아닌 오사카 정치로 일본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오사카부를 도쿄도처럼 오사카도로 승격해 부(副)수도로 삼자고 주장하며 도쿄 기반의 자민당 체제에 맞서 왔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자민당 정권은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하자 유신회를 끌어들여 출범했다. 자민당이 줄곧 반대해온 ‘오사카도’ 주장까지 수용했다. 도쿄 권력과 오사카 권력의 연대라 부를 만한 상황이다. 한데, 늘 장관 자리를 챙기던 공명당과 달리 유신회는 ‘각외 협력(내각 불참 연대)’을 고수하고 있다. 여소야대에서 공동 책임을 회피한다는 등 여러 해석이 나오는데, 도쿄와 오사카의 오랜 지역감정도 배경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불안해 보이는 동거가 시작됐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