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은 유서 깊은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고장으로,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다. 특히 옛 유적지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뤄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먼저 함안 군청 소재지인 가야읍에서 서쪽으로 3㎞ 떨어진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無盡亭)으로 간다. 조선 중종 때 사헌부 집의와 춘추관 편수관을 역임한 무진 조삼(趙參·1473~1544년)이 후진을 양성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직접 지은 정자다. 25세에 다섯 고을 목사를 지낼 만큼 뛰어난 인재였던 그는 사화(士禍)의 시대에 당파싸움을 지켜보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그의 조부는 생육신 조려 선생이다. 생육신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게 맞서 충절을 지킨 여섯 신하다.
무진정은 앞면 3칸·옆면 2칸, 팔작지붕 정자다. 앞면 가운데 칸은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929년 후손들이 앞뒤의 퇴를 길게 빼고 중앙 한 칸을 온돌방으로 꾸며 다시 세웠다. 1976년 경남도 유형문화재(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됐다.
바로 앞에는 후손들이 함안천 물길을 돌려 만든 연못 ‘이수정’이 있다. 왕버들, 능수버들, 느티나무 거목들이 2300여㎡에 달하는 연못을 에우고 있다. 가운데 섬은 콘크리트 다리로 연결돼 있다. 섬에는 콘크리트 기둥을 세워 만든 육모 지붕의 정자 영송루(迎送樓)가 왕버들 고목에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조선 중엽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 낙화놀이 명소다. 낙화놀이는 한지 안에 숯가루와 광목 심지를 넣어 불을 붙이는 전통적인 세시 놀이다. 일제강점기에 그 명맥이 끊어질 뻔했던 것을 1960년 괴항마을청년회가 재현하며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경남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방탄소년단 RM의 뮤직비디오 등에 등장하며 널리 알려졌다.
낙화놀이의 핵심은 40㎝ 정도 길이의 낙화봉이다. 나무를 태워 만든 숯을 절구통 등에 넣어 가루로 만든 뒤 가는 체에 쳐서 최대한 미세하게 만든다. 숯이 덜된 것이나 입자가 크면 불이 물에 떨어질 때 덩어리로 쏟아져 효과를 제대로 못 낸다고 한다. 이후 한지 위에 숯을 고르게 깔고 소리와 빛을 더하기 위해 소금과 화약 같은 것을 첨가한 뒤 가운데에 심지를 심고 한지 속 숯이 풀리지 않도록 바깥에 하얀 광목으로 한 번 더 싸서 꽈배기처럼 꼬아 봉을 만든다.
흰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일꾼들이 뗏목을 타고 이수정을 이리저리 돌며 낙화봉을 매단다. 해가 기울면 횃불로 심지에 불을 붙인다. 낙화봉 속의 까맣게 탄 숯가루가 어둠 속에서 불을 만나 점점이 빛으로 바람에 날리며 연못을 붉게 수놓는다. 바람이 스치면 수없이 많은 불꽃송이 향연이 펼쳐진다.
이 ‘K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지난 16일 일본인 관광객 1000여명이 찾았다. 한국관광공사가 한국 전통 불꽃놀이인 ‘낙화놀이’를 지역특화콘텐츠로 관광상품화함으로써 지역관광을 활성화하고자 경남도, 함안군과 함께 ‘함안 낙화놀이 스페셜 데이’를 개최했다. 일본어 해설과 함께 낙화놀이, 국악 공연 등도 펼쳐졌다. 가야 한복 체험, 소원지 쓰기, 한글 이름 쓰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뿐 아니라 한국 전통음식 등을 맛볼 수 있는 먹거리 공간도 펼쳐졌다.
함안의 옛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산인면 모곡리 고려동(高麗洞) 유적지다.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거처로 정한 곳으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오 선생은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며 자급자족했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있다.
칠원읍 무기리 주씨고가(周氏古家)의 뜰에 만들어진 연못 ‘무기연당’도 빼놓을 수 없다. 1700년대 건립된 고택의 대문채를 지나면 주택은 2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사랑채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담장으로 완전히 분리돼 작은 중문으로만 드나들 수 있는 별장 형식을 갖춘 고택과 연못이다. 연못에 유교의 우주관에 따라 사각 연못을 만들고 가운데 둥근 석가산을 쌓아 섬을 만들었다. 작지만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
가을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악양생태공원이다. 연못→핑크뮬리원→팔각정→악양루 순으로 둘러보면 좋다. 악양루는 중국의 호수 동정호(洞庭湖)에 있는 누각 이름을 따 왔다. 이곳에 걸터앉아 남강 위로 부서지는 금빛 노을과 붉게 물드는 강물, 그리고 강 너머 악양의 넓은 들을 바라보는 것이 하이라이트다.
함안에서 가을철 또 다른 명소는 입곡군립공원이다. 악양생태공원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이곳은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힐링 공간으로, 아름다운 단풍으로 이름나 있다. 입곡저수지 양 수변으로 1.5㎞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 중간지점인 출렁다리를 건너고 저수지 상공을 가로지르는 아라힐링사이클·바이크와 저수지 위를 둥둥 떠다니는 무빙보트도 즐길 수 있다.
여행메모
25일 내국인 대상 올 마지막 낙화놀이
달콤한 맛·쫄깃한 식감의 함안 대추
25일 내국인 대상 올 마지막 낙화놀이
달콤한 맛·쫄깃한 식감의 함안 대추
남해고속도로 함안나들목에서 함안군청이 있는 가야읍으로 가면 1500년 전 아라가야의 정수가 남겨진 유네스코 세계유산 말이산 고분군이 보인다. 출토된 유물 등을 소장한 함안박물관이 인접해 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가야읍을 지나 함안대로를 타고 함안면사무소 방향으로 약 6㎞ 가다 보면 오른쪽에 연못과 무진정이 보인다. 연못 오른쪽에 대형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낙화놀이는 올해 마지막으로 오는 25일 저녁에 개최된다. 이번 낙화놀이에 약 500명이 몰렸으며 예약은 마감된 상태다.
입곡군립공원 아라힐링사이클과 바이크는 1인 1만5000원, 2인 2만원이다. 무빙보트는 4인 기준 30분에 2만원이다.
가을철 함안의 특산품은 대추다. 달콤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대추를 활용한 각종 디저트와 음료도 맛볼 수 있다. 특히 대추를 넣은 대추차가 별미다.
함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