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LG전자 인도법인이 인도 뭄바이 국립증권거래소(NSE)에 공식 상장했다. LG전자의 인도 증시 상장은 인도 진출 28년 만에 이뤄졌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현대차그룹도 한국 기업 최초로 인도법인을 인도 증시에 상장시켰다.
한국 기업들이 최근 들어 앞다퉈 인도 증시에 진출하는 건 ‘슈퍼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인도에서의 사업을 확장하고 투자 ‘실탄’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려는 차원에서다. 인도 인구는 올해 약 14억64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미 2년 전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이 됐다. 인도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연평균 8.25%를 찍을 정도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유럽 등 서구 선진국들이 성장판이 닫혀가는 것과는 대비된다. 높은 경제성장률에 힘입어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도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이런 점에서 구글이 최근 인도 동남부에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150억 달러(약 21조28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하는 등 글로벌 기업들도 앞다퉈 인도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동시에 인도는 ‘넥스트 차이나’로 불릴 만큼 중국을 이을 새로운 제조업 생산기지로서도 주목을 받는다. 저렴한 인건비, 젊은 인구 구성 등이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396달러(약 341만원)로 중국(1만3306달러)의 5분의 1도 채 안 된다. 또 인도 중위연령은 지난해 기준 29.8세로 일본(49.9세), 한국(45.5세), 중국(40.2세), 미국(38.9세)보다 확연히 낮다. 기업으로서는 노동력 확보나 비용 절감 측면에서 모두 유리한 일석이조의 인구 구조다.
미·중 무역 갈등이 이어지고 글로벌 공급망 전반의 불안이 심화하면서 기존에 중국이 수행하던 생산기지 역할을 인도가 대체하는 흐름도 조성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나 현대차 인도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인도 내부 판매에 그치지 않고 중동이나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로도 수출된다. 인도를 아시아·중동·아프리카를 아우르는 ‘글로벌 사우스’ 공략의 교두보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유력 기업 중에서 가장 먼저 인도 시장에 진출한 것은 삼성전자다. 1995년 인도의 SIEL JV사와 합작법인을 만들어 처음 인도에 상륙한 뒤 이듬해 수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에 첫 가전 공장을 세웠다. 삼성전자 노이다공장은 이후 확장을 거쳐 세계 최대의 휴대폰 생산 공장으로 거듭났다. 스마트폰을 포함해 연간 1억2000만대의 휴대폰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인도 시장에서 중산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잡으며 매출액 기준으로 애플과 1~2위를 다투고 있다.
삼성전자는 LG전자와 함께 현지 가전 시장을 공략하며 주도권 경쟁을 펴고 있다. 인도는 인구에 비해 카스트 제도(신분제), 도농·빈부 격차로 인해 가전 보급률이 낮은 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인도의 가전 시장이 연평균 14%의 높은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는 최근 델리, 첸나이, 뭄바이 등 대도시에서 냉장고나 TV 등 가전에 대해 ‘주문 후 4시간 이내 설치’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도 가전 시장에서 ‘절대 강자’인 LG전자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것이기도 하다.
시장조사기관 레드시어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인도 시장에서 LG전자는 세탁기(33.5%), 냉장고(28.7%), TV(25.8%), 에어컨(19.4%) 등 주요 가전 품목 모두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가 인도 증시 상장을 결정한 배경에는 인도에서 확보한 이같은 ‘국민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도 있다. LG전자는 남부 첸나이 인근 스리시티에도 냉장고·세탁기 등을 생산하는 3공장을 착공하며 인도 내 생산능력을 계속 키워나가는 중이다.
국내 자동차 기업들도 인도 생산기지를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3년 서부 탈레가온에 있던 GM공장을 인수해 이곳에서 2세대 신형 베뉴를 생산하기로 했다. 지난해 인도 증시 상장 이후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1분기 인도에서 역대 최대 판매 기록를 쓰는 등 좋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미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여파로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큰 타격을 입고 있지만, 미국·중국에 이은 ‘3대 시장’ 인도에서 손실의 일정 부분을 만회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는 인도에 2030년까지 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포스코 역시 인도 최대 철강사 JSW와 합작법인(JV) 형태로 인도 동부 오데사주 일대에 연간 600만t의 생산 능력을 갖춘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2일 “인도는 철광석 등 자원이 풍부하고 개발할 곳도 많다 보니 철강 수요도 크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상·하수도나 전력망 등 기반 시설이나 물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문제 등은 인도 시장의 취약점으로 거론된다. 인도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넓은 땅에 비해 아직 물류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다 보니 운송 지연이 잦고, 그로 인해 물류비가 많이 든다”며 “그런 비용들이 저렴한 인건비의 장점을 일부 상쇄하는 게 단점”이라고 말했다.
또 극심한 빈부 격차 탓에 시장 규모 대비 실제 구매력이 기대보다 낮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 제품의 주된 수요층은 중산층·부유층이고 이외의 소비자들은 대부분 저렴한 중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