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일본 열도를 더 강하고 풍요롭게”라는 구호로 보수층 지지를 확보했고 집권 자민당 총재에 이어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됐다.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총리는 방위비(방위 예산) 증액 등 방위력 강화 정책을 우선 추진할 전망이다. 보수색이 짙은 다카이치의 역사관과 ‘일본 우선’ 정책이 협력 관계를 강화해온 한·일 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다카이치는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검토할 방침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22년 개정된 3대 안보 문서를 통해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이던 방위비를 2027년에 GDP의 2%로 늘리기로 했다. 다카이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대응해 목표를 상향 조정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다카이치가 강한 국방력을 중시하는 것은 동맹국이 국가 안보에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바람과 일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카이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안보 노선을 계승하는 ‘여자 아베’로 평가된다. 안보 정책에 있어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일본의 지속적인 군사력 강화에 중국이 반발하면서 동북아시아의 긴장도가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다카이치는 ‘강경 보수’ 제2야당 일본유신회와 연립정권을 수립키로 했는데 유신회는 자민당에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 개정에 관한 협의회 설치를 제안했다. 자민당도 개정에 이견이 없는 만큼 자위대 존재 근거를 명기하는 개헌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카이치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지도 관심사다. 다카이치는 그간 정기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지만 총리 취임 전인 지난 17~19일 가을 예대제 기간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취임을 앞두고 외교적 갈등을 피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당내 보수층 여론을 고려할 때 아베 전 총리처럼 불시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다카이치는 2022년 2월 “중간에 참배를 그만두거나 어중간한 일을 하니까 상대방이 기어오르는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카이치는 취임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방위비 문제뿐 아니라 미·일 무역 협정에 따른 5500억 달러 투자 계획의 후속 조치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미 간에도 논의 중인 사안이어서 다카이치의 대응에 눈길이 쏠린다.
‘아베노믹스’를 신봉하는 다카이치는 확장 재정과 완화적 금융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른 기대감에 닛케이지수는 연이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다카이치의 에너지 정책은 원전 가동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