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수험생이 과학탐구를 포기하고 대거 사회탐구 시험에 응시하는 이른바 ‘사탐런’ 현상은 내년에 한층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n수생이 폭증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크게 달라지는 2028학년도 대입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탐런은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및 수능을 도입하면서 미처 예측 못한 부작용이다. 섣부른 대입제도 개편이 학교 현장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향후 입시 개편 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탐런, 올해 대입 최대 변수로
오는 11월 13일 치러지는 2026학년도 수능에 응시원서를 낸 수험생은 모두 55만4174명이다. 이 중 사탐 과목만 선택한 수험생은 32만4405명(61%), 과탐만 선택한 인원은 12만692명(22.7%)이었다. 사탐과 과탐을 한 과목씩 선택한 인원은 8만6854명(16.3%)으로 나타났다. 사탐만 선택한 인원이 과탐만 선택한 인원보다 2.7배 많아진 것이다. 사탐을 한 과목 이상 선택한 비율이 무려 77.3%에 달했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사탐 51.8%, 과탐 37.8%, 사탐과 과탐을 섞은 조합이 10.4%였다. 사탐을 한 과목 이상 선택한 인원이 62.2%였다. 과탐을 선택하는 수험생이 대거 사탐으로 이동하는 사탐런이 심화된 것이다.
우직하게 과탐에 남은 수험생들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최저기준) 충족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저기준은 등급을 기준으로 하고, 등급은 수험생을 점수로 줄 세운 뒤 일정 비율로 끊어 산출한다. 응시자가 적을수록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렵다. 더구나 주요 대학일수록 최저기준이 까다롭게 설정돼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상위권 대학은 다른 대학에, 수시는 정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탐런은 올해 대입에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내년 과탐 10%대 예상
현재 고2가 치르는 2027학년도 대입에서 사탐런 현상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종로학원은 24일 과탐만 선택한 학생 비율이 내년에는 10%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예측 근거는 올해 고2가 치른 시·도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의 탐구 응시자 비율 변화다.
먼저 올해 고3이 고2였던 지난해와 올해 탐구영역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올해 고3은 지난해 3월 치른 학평에서 과탐을 51.2% 선택했다. 과탐 선택자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6월 학평 때는 50%로 떨어지고 9월 학평에서는 48%로 밀려났다.
이들이 올해 고3이 된 뒤 과탐 선택 비율은 더 떨어졌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6월 모의평가에서 과탐 비율은 40.3%, 9월 모의평가에선 38.7%였다. 그리고 오는 11월 수능 응시원서를 낼 때 과탐을 선택한 비율은 22.7%에 그쳤다.
현재 고2가 지난 3월 학평에서 과탐을 선택한 비율은 48.8%였다. 6월 학평에서 47%로 낮아졌고 9월 학평에선 43.3%로 더 떨어졌다. 지난해 고2(올해 고3)보다 과탐을 선택하는 비율이 2.4~4.7% 포인트 더 낮은 것이다. 이를 올해 고3의 과탐 이탈 흐름에 대입하면 올해 고2가 수능에서 과탐 두 과목을 선택하는 비율은 20%를 밑돌 수 있다. 특히 과탐 선택과목 가운데 응시자가 현격히 적은 과목을 준비 중인 수험생의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사탐런 여파 현재 고1로도
현재 고1이 치르는 2028학년도부터 사탐런 현상은 사라진다. 수능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계열 구분 없이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과목을 치른다. 탐구영역의 경우 통합사회, 통합과학 두 과목을 공통으로 보고, 국어와 수학 역시 선택과목 없이 공통과목만 본다. 선택과목의 유불리에 따라 수험생들이 이리저리 쏠리는 현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다만 2028학년도 대입의 경우 사탐런 여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2027학년도 대입에서 사탐런이 극심해져 과탐 응시자들이 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등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재수에 나설 수 있다. 특히 과학에 강점이 있는 수험생에게 재수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수능이 크게 바뀌더라도 재수에 불리하지 않다는 게 교육부와 입시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새로 수능 과목이 된 통합사회, 통합과학은 고1 때 배운 내용이다. 2028학번 이전의 경우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고1 때 배우고 2학년 때부터 심화 과목을 공부했다. 수학의 경우 시험 범위가 현재 문과에 가깝게 조정돼 있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과목으로 공부했던 수험생들이 불리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올해 대입 윤곽이 드러나는 연말에 사탐런 영향에 대한 수험생들의 냉정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며 “과탐 응시자가 손해를 본 게 확인될 경우 현재 고2에게는 과탐을 피하라는 강력한 신호가 된다. 이 경우 과탐만 보는 수험생이 내년에는 10%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