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첫 여성 총리이면서 아베 신조 이후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의 총리가 등장했다. 무라야마 담화의 무효화를 공언하고, 야스쿠니신사에 해마다 참배하며, 평화 헌법의 수정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지난달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에 대신(장관)이 당당히 참석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권 과정의 곡절도 일본 정부의 보수화를 부채질하게 됐다. 중도적인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정을 파기하자 다카이치는 극우에 가까운 일본유신회를 연정 파트너로 삼았다. 유신회가 내건 연정 조건에는 평화 헌법 개정, 자위대 군사력 강화, 재일 외국인 증가 억제 등 보수색 짙은 정책이 다수 포함됐다.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거치며 호전돼온 한·일 관계에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
다카이치 정부에서 한·일 관계에 긴장이 조성된다면 과거사나 영토 문제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2005년 상황의 재연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처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실용 외교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우호 관계를 형성했지만, 2005년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다케시마의 날을 지정하자 노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 꺼내고 이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나서면서 오랜 경색 국면에 빠졌다.
다카이치 정부는 불안정한 상태로 출범했다. 유신회 의석을 더해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유신회가 입각을 거부해 연정 결속력도 크지 않다. 이런 취약함을 만회하려 과거사 등의 언행 수위를 높인다면 한·일 관계는 물론 일본의 국익에도 심각한 악영향이 미칠 것이다. 대만해협을 비롯한 동아시아 안보 여건과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에서 한국과 일본은 관계 경색을 감내할 여유가 없다. 이 대통령이 당초 우려와 달리 대일 실용 외교에 나선 것도 이 때문임을 다카이치 총리는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야스쿠니신사 추계 행사 때 다카이치 총리가 참배하지 않았다고 한다. 총리 선출을 앞두고, 취임 후 방한 일정을 감안해 자제한 것으로 보여 긍정적이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는 양국 경제·안보에 중대한 과제가 됐고, 그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책임은 우리 정부에도 있다. 실용 외교를 견지하면서,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감정적 대응보다 냉철한 접근을 앞세워야 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이뤄질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의 대면은 그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