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절 YH무역 여공들은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면 당시 100원을 줘야 사먹을 수 있던 ‘보름달’ 빵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많은 이는 차마 그 빵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고향에 있는 가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름달을 차곡차곡 모아 고향에 보내고 싶었는데, 빵이 상할 수 있으니 보름달 모으기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결국 여공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내놓은 해법은 ‘빵계’였다. 빵이 나오는 날엔 10명이 한 사람에게 보름달을 몰아주고, 이튿날엔 다음 순번에게 빵을 모아주는 ‘조직’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한가득 빵을 받은 여공은 다음 날이면 고향에 빵 선물을 부치곤 했다. 빵을 통해 딸을 떠올릴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를 띨 고향의 동생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시절 ‘공순이’라 불린 여공 외에도 한국 현대사의 뒤꼍엔 이제는 잊힌 존재가 된 직군의 여성이 많다. 가령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식모살이를 했던 사람들, 이른바 ‘식순이’라 불린 여성들은 입 하나 덜기 위해 집을 나와 남의 집에서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에 감사해하며 청춘을 보냈다. 버스 안내양 ‘차순이’로 일했던 이들의 운명도 얄궂긴 마찬가지였다. 열악한 숙소에 살면서, 때론 온갖 수모를 감당하면서 돈을 벌었다. 역사 저술가인 정찬일은 공순이 식순이 차순이의 삶을 복기한 ‘삼순이’라는 책에서 “삼순이들의 삶엔 엄청나게 질긴 생명력이 흐르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화려한 경제 개발의 그늘에서 그들(삼순이)은 이름과 달리 ‘순’하게 살 수 없었다. 그들의 청춘은 화창한 봄날이 아니었다.”
지난 추석 연휴에 가장 관심을 끈 것은 KBS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내보낸 조용필 콘서트 ‘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이었을 것이다. 올해로 음악 인생 57주년을 맞은 조용필은 게스트도 없이 혼자서 밴드를 이끌며 150분간 28곡을 선보였다. 온갖 히트곡이 꼬리를 물었고 순간 최고 시청률은 18.2%까지 치솟았으며 방송 이후 곳곳에선 명불허전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콘서트의 성공을 이끈 것은 무대 주인공인 조용필이었지만 안방에서 공연을 시청한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조용필보다는 객석의 열띤 반응이지 않았을까 싶다. 방송을 염두에 둔 공연이었던 만큼 카메라는 분주하게 관객들의 표정을 담아냈는데, 객석에 앉은 중장년 어르신들의 얼굴은 시종일관 감동과 회한 사이를 오가는 것 같았다. 감격에 찬 듯한 그들의 반응은 보는 이의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방송이 끝난 뒤 유튜브에 올라온 공연 실황 영상엔 이런 댓글이 적지 않았다. “중년의 엄마 아빠가 즐거워하시는 모습 보기 좋아요” “관객들 모습 보면서 힐링받고 갑니다” “다들 너무 행복해 보여서 너무 행복합니다”….
공연을 관람한 장소가 객석이든 안방이든 올 추석 조용필 콘서트를 즐긴 사람 중엔 그 옛날 삼순이의 삶을 살았던 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에 떠밀려 이제는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그들은 그 옛날 자신의 청춘을 물들인 조용필의 음악을 들으면서, 여전히 꼿꼿이 무대에 서서 그때 그 목소리로 열창하는 조용필을 보면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에겐 지금도 건재한 조용필의 모습 자체가 그 어디에서도 받은 적 없는 위로이자 격려의 메시지였을 수 있다. 그러니 그토록 반응이 뜨거웠던 것일 테고. 조용필 공연을 보며 가없는 기쁨의 감격을 드러낸 어르신들, 그들이 받은 그 감동을 다시, 꾸준히 느끼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박지훈 디지털뉴스부장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