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컬렉션은 컬렉터의 손바뀜 역사다. 누구의 컬렉션을 이어받았는지가 컬렉션의 가치와 위상을 증명한다.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이 최근 개막한 가을기획전 ‘보화비장: 간송 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은 그런 관점에서 기획됐다. 일제강점기 문화유산 지킴이 간송 전형필이 어떤 수장가들로부터 어떤 작품을 수용했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일본에서 활동한 고려청자 애호가 영국인 변호사 존 갯즈비 컬렉션.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청자기린유개향로’(국보), ‘청자오리형연적’(국보),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국보) 등 우리가 아는 명품 도자 9점이 나왔다. 그는 1911년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영국대사관 법률자문관으로 근무하면서 고미술품 수집에 나섰고, 고려청자에 매료돼 조선까지 직접 왕래하며 수집했다.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태평양 전쟁 발발의 기운이 감돌자 그동안 모았던 수장품의 처분에 나섰다. 소식을 들은 간송 전형필은 그의 수집품을 인수해 고국으로 들여왔다. 훗날 이들 작품 중 4점은 국보, 3점은 보물로 지정됐다.
조선의 마지막 내시 이병직은 서화 컬렉션이 출중했다.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던 해에 남긴 걸작 글씨 ‘대팽고회’와 김정희의 애제자였던 서화가 고람 전기의 절필작 ‘행사기인(行事其人)’ 예서 대련, 중국 청나라 대학자 옹방강(翁方綱)이 김정희에게 선물한 ‘구양문충공상(歐陽文忠公像)’이 소개된다.
이밖에 조선 말기의 외교사절이자 서화가 운미 민영익, 간송에게 문화유산 수집의 길을 제시한 스승 위창 오세창, 근대 서화의 거장 안중식의 8촌 아우인 석정 안종원, 동아일보 및 경성방직 이사 송우 김재수, 조선중앙일보 사주이자 독립운동가 희당 윤희중 등 총 7인 수장가에게서 인수한 컬렉션 40점이 공개된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간송이 활동하던 시기 고미술 유통 구조와 수장사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며 “근대 한국미술의 지평을 넓히는데 일조한 7인의 수장가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기획됐다”고 말했다. 11월 30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