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덕 (14) 가파른 오르막과 거친 내리막, 트레일 러닝에 눈뜨다

입력 2025-10-22 03:06
심재덕 선수가 2007년 제11회 금수산전국산악마라톤대회를 완주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마라톤은 잘 닦인 포장도로를 달리는 경기다. 국제 대회든 동네 대회든, 정제된 코스에서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전부다. 그러던 1993년, 서울시산악연맹이 제1회 서울산악마라톤대회를 열었다. 내가 마라톤을 막 시작한 시기였다. 산길을 달린다는 발상이 마음을 흔들었다. 그 대회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30년 넘는 역사를 자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12번의 대회를 끝으로 맥이 끊겼다.

1997년 제천산악마라톤연맹이 청풍호 일대에서 처음 연 금수산산악마라톤대회가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트레일 러닝 대회가 됐다. 그때는 ‘트레일 러닝’이라는 말조차 없어서 산악 마라톤이라 불렀다.

내가 처음 출전한 대회는 2001년 제5회 금수산산악마라톤이었다. 코스는 23㎞, 가파른 오르막과 거친 내리막이 이어졌다. 당시엔 실업 선수의 참가 제한도 없었다. 제천시청 소속 선수들이 연습 삼아 나와 좋은 성적을 냈고 나는 1시간20분16초로 3위를 했다. 첫 도전치고는 괜찮은 결과였다. 그러나 경기 내내 물만 마시고 달렸던 탓에 산에서 내려올 때는 다리가 풀려 절뚝이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동안 금수산 대회에서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08년 코스가 35㎞로 늘어난 뒤 연마를 거듭해 네 번 연속 우승하며 3시간6분50초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아직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능선을 오르내릴 때면 도로 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가 있었다. 숨이 막힐 만큼 가파른 오르막에서도 이상하게 요람에 누인 아기처럼 마음은 평안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정상으로 오르는 기분이었다. 산은 내게 달리기의 또 다른 학교이자 예배당이다.

트레일 러닝 대회는 1년에 서너 번밖에 없다. 2002년에는 서울산악마라톤이 이름을 바꾼 북한산 축제에 참가했다. 거리 17.5㎞, 험준한 코스였다. 도로의 강자 이병효 선수가 선두로 나섰지만 산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산은 속도가 아니라 호흡과 균형의 싸움이었다. 그는 점점 뒤처졌고 나는 묵묵히 리듬을 타며 앞으로 나아갔다. 도로에서는 느리더라도 산에서는 강한 부류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오르막을 밀어붙이는 힘, 오래 버티는 끈기, 그것이 나를 세계적 선수로 만든 전매특허다.

북한산 대회 우승 후 서울시산악연맹에서 연락이 왔다.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하세쓰네산악마라톤에 한국 대표로 참가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그렇게 그해 가을, 나는 처음으로 해외 산악 마라톤 무대에 섰다. 후지산의 긴 산줄기와 거대한 산림의 울림, 일본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속에서 달린 그 경험은 지금도 선명하다.

2004년 봄, 히로시마국제산악마라톤에 초청받았다. 히바야마 스키장에서 출발해 주변 능선을 도는 18.5㎞ 코스였다. 짧은 거리지만 더 치열했다. 초반에는 일본 선수들의 빠른 페이스에 밀렸으나 한 명씩 추월하며 1시간33분28초로 2위를 했다. 결승선 2㎞ 전, 내가 마지막으로 제친 선수는 오랜 경쟁자이자 동료인 일본의 가부라키 쓰요시였다. 일본에서 ‘트레일 러닝의 신’이라 불린 사내다. 그와 나는 동갑이고 이후 여러 대회에서 만나 이기고 지기를 반복했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