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율을 현행법에 맞게 표기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엉터리 할인율과 관련된 지적이 나올 때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실제로 국내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쿠팡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업체가 ‘할인율 거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20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뻥튀기 할인율’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업체는 한두 곳이 아니다. 가령 SSG닷컴 ‘이마트몰’에서 지난 16일부터 오는 29일까지 ‘1+1’ 증정 행사를 한다고 홍보 중인 L사의 섬유유연제는 지난 1~15일에도 같은 조건으로 행사를 열었다. 소비자로선 행사 개시일인 16일 이전과 같은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이지만 한시적인 50% 할인가에 살 수 있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마트는 “협력업체 매출 활성화 차원에서 상호 협의하에 행사 기간을 연장했다”며 “행사 일정 연장 과정에서 고객이 오인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지해 시정 조치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할인 행사를 연속적으로 하는 것도 표시광고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한 공정거래 분야 전문 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1’ 행사 마지막 날이라 급하게 물건을 산 고객이 다음 날 보면 당연히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겠느냐”며 “행사가 끝나자마자 똑같은 행사를 연이어 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엉터리로 진행되는 ‘1+1’ 행사 외에도 뻥튀기 할인율을 앞세워 고객을 꼬드기는 일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물건을 직접 판매하지 않고 중개만 하는 이커머스들은 사실상 이 문제의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
실제로 오픈마켓 네이버, 11번가, G마켓 등에서는 할인율이 부풀려진 상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이들 업체가 내놓는 항변은 대동소이하다. “할인율을 적정하게 관리하기 위해 이상 가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판매업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안내조차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3년간 생필품 등을 판매하고 있는 박모(34)씨는 “상품을 등록할 땐 할인율을 최소한 50% 정도로 책정해놓곤 한다. 아무래도 할인율이 높은 것에 눈이 먼저 가지 않겠느냐”며 “한 번도 할인율 문제로 네이버로부터 시정 권고를 들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유통업체가 표기한 할인율을 믿고 구매한 소비자들은 크고 작은 불편을 겪기도 한다. A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50% 할인이라고 쓰인 외투를 주문했는데, 제품을 배송받은 뒤 가격 태그에 적힌 정가가 구매한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다. A씨는 판매자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했으나 판매자는 반품 배송비를 공제한 금액만 환불해주겠다고 답변했고, 결국 A씨는 소비자원에 민원까지 넣어야 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할인율만 보고 구매를 할 경우 큰 폭의 할인 혜택을 받았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크다”며 “할인율 부풀리기 같은 기만 행위가 많아지면 소비자들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할인율 거품 문제가 유통업계에 퍼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공정위가 이 문제로 이커머스를 직권 조사해 처분한 사례는 올해 알리익스프레스와 머스트잇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여력이 없어 관련 조사를 제대로 시행하기 어려웠다”며 “앞으로 보다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통업계는 현행법이 이커머스 환경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전자상거래는 실시간으로 수많은 상품이 등록되는 공간이다. 가격 변동 주기도 짧다. 특히 최근엔 플랫폼 간 상품이 연동되는 사례도 늘고 있어 플랫폼들이 할인율을 비롯한 상품 정보를 통제하고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이 내부 시스템 고도화 등 자율적인 관리 노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상품을 100% 모니터링하는 데엔 물리적 한계가 있다”며 “산업 특성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소비자들에게 더 명확하고 공정한 가격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