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줄 몰랐다”… 단순 변명 안 통한다

입력 2025-10-21 02:04
20일 오후 충남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받는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이 충남 홍성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 등에 가담했다가 송환된 한국인 일부는 범죄에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처음엔 범죄인 줄 몰랐다”는 수준의 단순 변명은 참작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는 필리핀에서 한국인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콜센터 직원으로 3일간 짧게 활동한 A씨에게 2023년 6월 사기 등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2016년 6월 7~9일 필리핀에 소재한 보이스피싱 사무실로 출퇴근했고, 출근 사흘째에 필리핀 이민청이 범행 현장을 급습했다. 달아난 A씨는 이후 국내에서 검거됐다.

A씨는 “범죄조직이 무언의 압력을 줬다”거나 “3일간 도망 기회를 엿봤고 실제 전화한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다른 조직원들은 “A씨가 일(보이스피싱)을 하기 위해 온 것으로 안다”거나 “범행 이탈이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단체의 범행을 인식하고 합류한 다음 사기 범행을 직접 실행하기 위해 출퇴근을 반복한 것”이라며 “필리핀 이민청의 단속이라는 우연한 외부적 원인으로 인해 (범행이) 중단된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A씨는 이후 항소심에서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피해금 전액을 공탁한 점 등의 사유가 참작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됐다.

법원은 수사 협조를 감형 사유로 주장할 경우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수원지법 형사15부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 ‘투자 리딩 사기’ 조직의 인출책·자금세탁책인 B씨에게 지난해 9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수원고법 형사2부는 지난 3월 이를 확정했다.

B씨는 조직 상위 책임자의 여권 사진을 제출하는 등 수사를 도왔다며 감형을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형사소추가 가능할 정도로 피고인이 수사에 기여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B씨는 장기조직·각막 기증 등록까지 했지만 양형에 참작되지 않았다.

법원은 범행 가담자의 탈출을 돕거나 주범 검거에 조력하는 등의 사례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부산고법 울산재판부 형사1부는 캄보디아의 보이스피싱 조직에 콜센터 상담원을 보내는 모집책 역할을 했던 C씨에게 지난 5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C씨는 캄보디아로 간 상담원 일부가 일주일 만에 귀국을 요청하자 적극적으로 도우며 여비를 준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이 검거된 후에는 경찰에 주범에 대해 적극 진술했고, 이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로 이어졌다.

곽준호(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피해자성이 인정되려면 초반에 범죄 인식이 없었다는 점, 이탈 의사를 밝혔음에도 협박 등 범행 강요가 있었다는 점 등이 물증이나 다른 공범들의 진술 등으로 소명돼야 한다”면서 “예컨대 여권을 빼앗겼는지, 입국 3개월 이후 비자 연장이 있었는지 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자창 박장군 박성영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