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오늘 지출 내역) 스타벅스와 지하철 5300원.” B: “스타벅스? 배가 불렀군요.” C: “물을 마시세요.” D: “삼다수 1100원.” E: “삼다수? CU미네랄워터는 600원입니다.” F: “물을 왜 돈 주고 사 먹죠?”
최근 청년들에게 유행인 이른바 ‘거지방’의 대화 내용 일부다. 거지방은 거지처럼 살면서 돈을 아끼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들이 모여 자신의 지출 내역을 털어놓고 비판(?)을 받는 성격의 단체 채팅방이다.
청년들은 잘 먹고 잘사는 법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덜 먹고 덜 쓰는 법을 공유한다. ‘1억 모으기’ 등 과거에도 있었던 단순한 절약 모임과 달리 ‘거지처럼 살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냉소와 절박함이 묻어난다.
이들이 거지로 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 있다. 우수한 성적에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자격증을 따도 신입을 채용하는 대기업은 찾기 힘들다. 경력을 쌓으려면 인턴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백’ 좀 있는 부모 도움이 아니면 맞춤형 경력을 쌓기도 어렵다. 그래서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일자리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쉬었다’는 15~29세 청년은 50만명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지난달 청년 고용률은 45.1%로 17개월 연속 하락세다. 65세 이상 고령층보다 청년 고용률이 낮은 사회가 정상은 아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1대 9의 비율로 나눠 있다. 안정적인 수입과 고용이 정년까지 보장되는 상위 10%의 양질의 일자리 시장이 있는 반면 노동 유연성이 유연하다 못해 흐물흐물해진 비정규직·하청 노동자가 주축인 90%의 시장이 존재한다. 결혼과 육아 등 미래를 꿈꿀 자격증 같은 상위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대다수 젊은이는 그 구멍 주변의 개미지옥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직, 숙식 제공·월 500만원 보장’이라는 허황된 광고에 속거나 자신을 포기한 채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부에서는 스스로 범죄 현장을 찾아갔다고 비난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불법적인 일에 기웃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는 잃을 게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인 청년들은 쉽사리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끝은 지금 밝혀지고 있는 불법 감금과 폭행, 사망 사건들이다.
거지방에서 커피값을 두고 힐난하거나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갇혀 있는 청년들은 절약과 도피라는 방식이 다를 뿐 이들의 절망은 같다. 청년들의 절망감을 해소하는 실마리는 결국 정부가 찾아야 한다. 불합리한 노동시장은 개개인의 잘못보다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시대라는 장기 난제를 해결할 방법은 지금의 청년들이 각 산업현장의 한쪽에서 제 몫을 해내는 기성세대로 성장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청년 정책은 아직까진 낙제점이다. 고용노동부의 약칭을 고용부에서 노동부로 바꾼 것부터 마치 상위 10% 노동시장 기득권층을 보호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다짐 같다. 고용이 있어야 노동이 생기는 법인데 청년세대에게 약칭 변경은 선후가 뒤바뀐 것으로 느껴질 것 같다. 전 국민에게 수십만원의 지원금을 베푸는 호의 일부만이라도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층 임금 보조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정년연장 이슈와 관련해 최근 노동부에서 찬반 설문조사를 해보면 예상과 달리 청년층의 찬성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기성세대가 우리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반발보다는 우리는 이미 틀린 몸이니 아버지 세대에서 더 오래 일해 용돈이라도 더 달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이성규 사회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