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내가 틀릴 수 있다

입력 2025-10-21 03:16

언젠가 해외 사역 중 숙소에서 생수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주둥이가 찌그러져 있었다. 옆에 있는 멀쩡한 생수통들과 비교가 되니 이상하게 마음이 안 좋았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수없이 설교했으면서도 생수통 하나도 외형 때문에 거슬려 하고 있다는 것을. 좋고 싫음을 정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이 참으로 깊게 박혀 있다. 이 고정관념을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저마다 확고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산다.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기준, 사람을 평가하는 나만의 잣대, 세상을 보는 익숙한 시각. 이런 고정관념은 자신에겐 너무 당연해 보이니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고정관념이야말로 진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도 각자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주제도 바로 고정관념의 문제다. 유대인 성도들에게는 ‘율법 제일주의’가 고정관념이었다. 이방인도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굳센 확신이었다. 반면 이방인 성도들은 자유가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에 익숙했다. 예수만 믿으면 되는데 왜 유대인의 전통에 얽매여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모든 견해를 들은 후 야고보는 유대인에게 “이방인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하며 율법보다 복음이 우선임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이방인에게는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면서 구원받은 자에게 합당한 삶을 요구했다. 이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순종이었다.

결론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각자 자신의 고정관념을 꺾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짐을 인정해야 했다. 이방인은 이방인대로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야 함을 인정해야 했다.

한 성도는 61세에 고위 공직에서 은퇴하고 비상임감사 일을 했다. 얼마 후 그 일마저 끊어지자 ‘이제는 어쩌나’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내 책을 읽다가 ‘노동하는 것이 청지기 삶에 가장 합당한 일’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라는 생각에 그는 곧장 구청에 가서 구직 신청을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경비직과 청소직뿐이었다. 경비가 청소보다 조건도 낫고 수월해 보였다. 하지만 경비는 주일을 지킬 수 없었다. 고민이 깊었다. 결국 그는 주일 성수를 위해 청소일을 선택했다. 처음엔 마음이 어려웠다. 고위직을 지낸 사람이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다니려니 남들이 전부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런 어려움을 교회 소그룹에서 매주 나누며 지체들의 권면과 격려를 받았다. 그 힘으로 그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 이어갔다. 그러자 청소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천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일을 성수하며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주셨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해.’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대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니 영육이 평안해졌다.

사실 우리 안의 고정관념은 스스로 깨뜨릴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는 버릴 수 없다. 우리 생각의 기본값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에 우리 삶에 갈등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때 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큐티(QT) 즉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구하는 시간이다. 큐티를 통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내 마음을 찌를 때,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진리가 보인다.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성경은 역사책이나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줄 믿는다.

(우리들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