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그래도] 과거·미래의 두려움에 오늘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 실체부터 직시하라

입력 2025-10-22 00:30
게티이미지뱅크

학창 시절 친구들의 학교 폭력으로 고통을 당했던 언니는 어느 날 자살 시도를 했다. 자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는 자신을 방 안에 가뒀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 세상에 대한 공포가 그녀를 이 세상과 단절시켰다.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는 아버지를 대신해 방문 앞에 밥을 갖다 놓으며 언니를 챙겨야 하는 것은 고등학생 하늘이의 몫이다. 방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때는 두려워 방문을 두드려 본다. 그래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우울증을 앓는 언니를 놔두고 꼼짝도 할 수 없는 하늘이는 어느 날 제주도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언니를 책임지라고 멀리 가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기도 하고 방문 앞에서 언니에게 협박도 해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모두가 잠든 밤 언니 방에선 왔다 갔다 하는 걸음 소리가 들린다. 자신을 돌보느라 지친 동생을 위해 방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조금씩 연습하는 중이다. 지난해 12월 방송된 KBS 단막극 ‘발바닥이 뜨거워서’의 내용이다.

낙담하게 만드는 두려움

과거의 고통과 상처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낯선 이들에 대한 두려움,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낙담하게 하고 세상과 단절시킬 정도로 위력을 갖는다. 고슴도치처럼 위협을 느끼면 몸을 웅크리고 가시를 세워 방어한다. 불안과 두려움은 악몽이 되어 잠자는 시간까지 방해한다. 가장 싫어하는 일들이 꿈속에 나타나 괴롭힌다. 벼랑에서 떨어지는 꿈,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꿈, 잠재적인 두려움이 꿈속에서 발현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용기를 가로막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집착으로 작용한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사회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진정 원하는 삶이 아닌 가식적인 삶을 살게 한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365번 나온다. 그만큼 인간은 365일 매일 두려움과 걱정 속에 살아간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 1:9)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성경 구절 중 하나다.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고뇌의 더 큰 원인이 되듯이 인간이 겪는 고통 대부분은 상상력, 회상과 예상이라는 지성 활동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자체뿐”이라고 했다.

두려움을 명명하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고 두려움의 원인을 찾는다면 극복할 수 있다. 또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다. ‘할 수 있다’ ‘자신 있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두렵게만 다가왔던 현실을 쉽게 건너갈 수 있다.

‘두려움이 내 삶을 결정하게 하지 마라’의 저자 브렌든 버처드는 “우리를 억압하려는 냉소주의자들과 폭군들은 대부분 자신의 실패와 열정 없음을 감추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나르시시스트라고 몰아붙이는, 좌절감으로 가득한 소인배들이다. 스스로 작게 느끼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우리를 깎아내린다. 이들은 컴퓨터나 높은 지위 뒤에 숨어서 전혀 신중하지 않은 견해를 내뱉으며 우월감을 느낀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의 질투나 사려 깊지 못한 행동, 그들의 말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부와 명성, 권력 등 세상의 목표보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으려는 우리는 훨씬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버처드는 “우리가 활력이 부족한 이유는 현재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과거나 미래로 향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에 연연하면 현재에 집중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주저앉는 것은 태만의 죄다. 현재에 집중하면서 삶의 의미, 인생의 의제를 찾아야 한다.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유혹하고 두렵게 만드는 내면의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두려움의 원인 중 하나가 타인의 시선이라고 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평가할 때 들이대는 잣대는 자신이 세운 기준 혹은 남이 세운 기준, 두 가지뿐이다. 니체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한다.

존 오트버그 목사는 두려움을 명명(命名)하라고 권유한다. 두려움이 확인되지 않은 막연한 불안으로 남아 있게 방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두려움을 간단한 말로 표현해 보고 글로도 써보라고 한다. “취직을 못 할까 두렵다” “평생 결혼하지 못할까 두렵다.” 두려움을 기록하고 나면 그것을 곱씹지 않게 된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직시하면 오히려 극복할 수 있다.

오트버그 목사는 그러면서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두려운 상황을 면하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다. 두려운 상황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과 뜻을 하나님께 맡겼다. 더 이상 두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삶을 바로잡을 용기’)

그는 설교단에서 기절해 쓰러졌고 그 뒤로도 하나님께 두려움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설교하는 동안 두려움을 자주 느꼈다고 한다. 어느 날 설교하다 기절했던 교회의 창립 75주년 기념 예배에서 설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초청한 교회의 목사는 ‘기절하는 목사’로 기억하고 있지만 전에는 대리석이었던 설교단에 카펫을 깔아놓았으니 안심하고 설교하라고 했단다. 오트버그는 “하나님은 내 약함을 없애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나의 다른 고통과 실수와 실패도 막아 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40년간 설교할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셨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중에도,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는 중에도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만 있다면 두려움은 우리 앞에 아무런 장애물이 될 수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두려움

성경은 두 가지의 두려움을 정의한다. 그중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심판을 두려워하면 악을 떠나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이끄는 동기가 된다. 또 하나는 세상적인 두려움이다. 질병과 고통, 재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구하도록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를 바라보고 물 위를 걸었다. 그때는 두려움이 없었다. 예수를 온전히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눈을 팔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본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다. 예수가 잡히셨을 때도 두려움에 휩싸여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됐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다. 돌팔매 하나로 거인 골리앗 군대에 맞서 승리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며 용기를 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나선 여호수아에게도 같은 믿음을 주셨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붙잡았다.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박해와 고난을 겪은 사도 바울 역시 믿음과 사랑으로 두려움을 극복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 2:3)고 고백하기도 했지만 그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에 관한 놀라운 점은 그분을 두려워하면 다른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나,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고 했다. 존 비비어 목사도 ‘거룩한 두려움’에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반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능력을 상실시켜 우리를 노예로 전락시킨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위선의 누룩에 갇힌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인정에 목마른 삶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이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