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의 유혹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동네 정릉천을 산책하다 한 자리에 멈춰 섰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작은 바위 계곡 사이로 흐르는 힘찬 물소리가 들렸다. 물 위에는 행복한 오리 일가족이 떠다니고 물속에는 버들치 가족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공중에는 하얀 나비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녔다. 새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눈을 감고 들어보니 참새 박새 해오라기 까치 소리가 섞여 있었다. 작은 피조물들이 부르는 생명의 노래가 멋진 하모니를 이루었다. 창조의 다섯째 날 풍경을 보는 듯했다. 전쟁터 같은 세상이라지만 에덴 같은 작은 천국이 여기에 있었다.
나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마음의 카메라를 돌리며 사진을 찍었다. 휴대전화로는 이 풍요로운 생명의 기운과 소리와 조화를 담아낼 수 없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응시하면 흘러가던 시간이 멈추고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이 마음에 담긴다. 머무름은 영원을 포착하는 기술이다. 내 마음에는 이렇게 찍은 사진이 여럿 있어 힘들 때면 종종 꺼내 본다. 가을 가기 전에 몇 컷 더 찍어야겠다.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