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축구 국가대표팀이 브라질에 완패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내년 월드컵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기업들 사이에는 기후정책에 대한 불안감 역시 팽배해 있다. 기후정책은 우리 기업이 따라야 할 일종의 경기 규칙이다. 심판이 반칙이 아닌데 휘슬을 불거나, 오프사이드 기준이 수시로 바뀐다면 어떤 팀도 전술을 세울 수 없다. 지금 산업계에 필요한 건 실현 가능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규칙이다. 그래야 골문 앞 위기에서도 침착하게 전술을 이행할 수 있다.
연말을 앞두고 우리나라는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유엔 제출과 배출권거래제 할당 계획 수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NDC는 4가지 감축 경로가 논의 중이다. 배출권거래제는 특히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 부문에서 배출권을 돈으로 구매해야 하는 유상할당 비율 상향이 거론된다. 하지만 목표 달성의 이행 수단, 일정, 재원 설계는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규칙을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마지막 하프타임이다. 속도와 구호보다 기술 성숙도, 산업 여건을 반영한 달성 가능하고 명확한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경로는 의지의 선언이 아니라 기술 상용화 시점과 산업 파급효과를 토대로 설계돼야 한다. 수소환원제출, 나프타분해(NCC) 전기가열로,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과 같은 핵심 기술은 설비 교체 주기, 인프라 확충, 단가 하락이 맞물려야 본격적인 확산이 가능하다. 탄소 감축을 위한 핵심 기술 상용화가 2035년 이후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생태계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감축 속도가 나기 어렵다. 2035년까지의 경로를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전반기와 확산, 실행을 위한 후반기로 나눠 단계적인 감축 경로를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난달 정부의 배출권거래제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은 현재 10%에서 2030년까지 50%로 상향될 전망이다. 이는 배출권 가격과 전기·가스 요금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의 감축 비용을 빠르게 증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부문·공정별 에너지 효율, 가격 전가 가능성, 수출·고용 영향을 아우르는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유상할당 비율이라는 숫자만 논할 게 아니라 언제, 무엇으로, 어떤 비용 구조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인지까지 분명히 해야 한다.
덧붙여 철강과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은 기후정책의 강도 상향에 따른 비용 급증에 노출돼 있다. 이들 업종에는 전력비용 인상분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개선할수록 인센티브가 커지는 공식을 적용해야 한다. 기준이 명료, 공개, 예측가능할수록 기업의 장기 설비 전환과 구조 개편이 빨라진다. 새로운 기후정책은 예측가능한 정보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배출권 가격, 전기·가스 요금, 환율과 국제 가격 스프레드, 고용·지역경제 파급 등을 묶은 가칭 ‘기후정책 시나리오별 영향지도’를 정례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이는 감독의 전력 분석표처럼 기업이 공장 통합, 공정 전환, 투자·철수의 플랜을 세우는 근거가 된다. 논란과 불확실성을 줄이는 가장 빠른 길은 정보 비대칭성 해소이기 때문이다.
아직 규칙은 미완성이다. 2035년 NDC와 배출권거래제 할당 계획은 기술 상용화 시점과 산업 영향을 정밀 반영해 강도를 정하고, 산업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중장기 지원 로드맵으로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그때 기후정책은 국내 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전술적 근거가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더 빠른 속도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실효성에 중점을 둔 더 정교한 규칙과 실행 계획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