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해외 취업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향한 우리 청년이 현지 온라인 사기조직에 감금돼 고문 끝에 숨졌다. 당시 현지 검안은 심장마비를 사인으로 제시했지만 20일 진행된 한국과 캄보디아 공동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 경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초국가 범죄조직과 캄보디아의 부패 공생 구조 속에서 한국 청년이 물건처럼 거래되고 폐기된 인간 존엄의 파괴를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험을 감지하고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인간안보 감수성 부재에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5개월 전 캄보디아 ‘범죄단지’ 내 가혹행위에 대한 긴급 대응을 우리 정부에 촉구했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납치와 감금 신고가 폭증하던 지난 2년 동안 여야 국회의원들도 4차례나 캄보디아를 방문했으나 누구도 범죄 실태를 파악하거나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현지 대사관 역시 구조 요청을 한 피해 당사자에게 “직접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신고하라”며 뒷짐만 지고 있었다. 그 사이 국민은 외국의 범죄 공장에서 몽둥이질을 당하고, 발톱이 뽑히며, 장기 적출 위협 속에서 노예처럼 일했다. 국가는 국민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도 몰랐고, 구조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일부 구조는 민간단체가 사비로 수행했다.
이렇게 끔찍한 현실은 우연은 아니다. 납치, 감금 신고가 빗발친 시하누크빌은 한때 중국의 일대일로(BRI) 전략 거점으로 급성장했지만 2019년 중국 정부의 해외 도박 금지 조치 이후 자본이 빠져나가자 도시는 급속히 붕괴했다. 버려진 카지노와 호텔, 금융망은 범죄조직의 손에 넘어가고, 캄보디아 정부의 사실상 묵인 속에 도시는 순식간에 감금, 사기, 고문이 결합된 ‘범죄단지’로 변했다.
그런데 이번 캄보디아 사태의 뿌리는 국외에만 있지 않다. 한국 사회 내부에서의 부는 성공의 절대 기준이 됐지만 목표에 이르는 공정한 수단은 부족해졌다. 꼼수가 통하고 노력보다 ‘한방’을,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기성세대 문화 속에서 청년들은 합리적 가치관을 내재화하지 못했다. 청년들은 결국 불균형적 취업시장과 단기 수익의 유혹 사이에서 캄보디아발 제의에 빠르게 유혹당했다. ‘고수익 아르바이트’ 같은 말들은 위험 신호였지만 국가가 제때 차단하지도 않았다. 정쟁 탓에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는 수개월 동안 멈춰 있었다. 청년들에게 ‘장집’(통장 모집책)의 유혹은 위험이 아니라 탈출구처럼 보였다. 그 결과 해외에서조차 한국어로 한국인을 속이며 보이스피싱, 몸캠피싱, 로맨스 스캠 등을 저지르고 같은 국민이 중국인 범죄조직 밑에서 서로를 착취하는 기괴한 현실을 낳았다.
캄보디아 스캠산업은 단순한 사기를 넘어 인신매매, 강제노동, 고문이 결합된 반인도적 범죄로 드러났다. 피해는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으며, 불법 자금은 여러 국가의 금융망을 거쳐 세탁되고 은닉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국제 공조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대응은 범죄 피의자 64명 송환에 머물러 있다.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감금된 1000명 이상의 국민을 시급히 구조하는 것이 우선 중요한 만큼 정부는 즉시 아세안+3 협력체와 유엔 인권이사회를 통해 캄보디아 정부에 범죄단지 폐쇄와 범죄조직 해산을 촉구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범죄조직이 주변국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국제 연대도 추진하며 국제 공조 수사 및 글로벌 온라인 사기 피해 환수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다가오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정부는 초국가 범죄 문제를 의제로 제안해 아시아 안전 담론을 주도할 책임이 있다. 국민이 팔리는 것을 사전에 막고, 국민을 철저히 구하는 나라. 그것이 우리가 믿고 기대하는 최소한의 국가 모습이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 경찰학과
에너지안보환경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