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을 중심으로 퇴직연금 기금화가 검토 중이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입률과 수익률을 높이려면 새로운 모델을 도입하는 것보다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등 현재 운영 중인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고용복지학회가 지난달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퇴직연금 기금화에 ‘찬성’ 또는 ‘매우 찬성’ 답변을 한 시민은 30.9%로 조사됐다. ‘보통이다’라는 중립 답변은 50.3%였고 ‘반대’ 또는 ‘매우 반대’는 18.8%로 집계됐다.
반대 이유로는 “손실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답변이 40.2%로 가장 높았다. 이어 “기존 민간 금융기관과 다를 바 없어 실효성이 의문이다”(33.5%) “개인의 직접 운용 선택권 축소”(17%) 등의 이유도 있었다.
회의적인 입장인 이들은 기금화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기금형 제도가 있는 해외 사례를 보면 수익률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일보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계약형의 최근 5년 평균 수익률이 5.3~10.7%, 기금형은 5.1~10.0%로 추정된다. 일본도 10년 평균으로 계약형이 3.77%, 기금형은 3.63%로 큰 차이가 없다.
퇴직연금사업자인 금융투자업계도 대체로 기금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업계는 현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디폴트옵션에서 초저위험 포트폴리오를 제외하는 방안 등이다. 현재 디폴트옵션 상품에는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드펀드(BF) 단기금융펀드(SVF)와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 등이 있는데, 해외처럼 초저위험 상품을 제외해 더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는 디폴트옵션 상품에 원리금 보장 상품이 들어가지 않는다.
원금 보장 상품 비율이 90% 정도에 이르는 확정급여형(DB)의 경우 운용 내역 공시도 하나의 대안으로 언급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21일 “통상 DB형을 채택하는 회사들은 손실만 발생하지 않으면 되니 예·적금이나 단기채 등 안전한 상품을 선택한다”며 “일본 등에서는 회사가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공시하도록 하고 있어 이러한 방안이 도입되면 기업들이 조금 더 활발하게 수익률 제고에 힘쓰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이 밖에 기금화에 반대하는 측은 최근 확정기여형(DC)을 중심으로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한다.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 중 실적배당형 비중은 2022년 11.3%에서 2023년 12.8%, 지난해 17.5%까지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실적배당형 상품의 비중이 점진적으로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아직 비중이 원금 보장 상품에 비해서는 미미하지만 점차 트렌드가 바뀌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를 조금 더 지켜본 뒤 결정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