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반품 서비스’가 악용되면서 유통업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복이나 수영복 같은 특정 시즌 상품을 짧게 사용한 뒤 즉시 환불을 요구하는 이른바 ‘반품 얌체족’이 증가하면서다. 반품으로 마무리하는 시즌성 소비가 몇몇 개인의 꼼수를 넘어 하나의 가성비 소비문화처럼 여겨지면서 블랙컨슈머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기업의 비용 부담이 선량한 소비자에게로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추석 연휴가 끝난 뒤 온라인 쇼핑몰에 한복을 비롯한 시즌성 상품의 반품 요청이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쿠팡의 ‘반품 마켓’ 카테고리에는 아동용 한복이 대거 등장했다. 지난 17일 기준 쿠팡 반품 마켓의 ‘패션 잡화 인기 브랜드 할인’ 페이지에 등록된 183개 상품 중 26개가 한복 또는 관련 액세서리 제품이었다. 전체 반품 상품 가운데 7분의 1을 차지했다. 쿠팡 직원이라고 밝힌 한 작성자는 소셜미디어에 “반품 검수 중 한복만 100번 넘게 접었다”고 전했다. 쿠팡이 일종의 ‘명절 한복 대여소’로 전락했다는 씁쓸함이 담겼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반품 등급 ‘중’으로 산 한복인데 택도 잘 달려 있고 입은 흔적도 없었다”며 “복불복이지만 한 번 입혀보고 마음에 안 들면 환불하면 된다”는 후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의 새 상품 받았다’ ‘명절에만 입었으면 상태 괜찮다’는 댓글들이 달리며 합리적인 소비 팁처럼 공유되고 있다.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도 관련 제품들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8일 하루 동안 번개장터에 올라온 한복 판매 글은 200건이 넘었다. 여름철 수영복, 여행용 캐리어, 테마파크 소품 등도 같은 방식으로 ‘반짝 사용’ 후 반품되거나 중고로 전환되고 있다.
의도적인 반품 행태가 불법은 아니지만 소비문화를 저해하고 결국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반품 상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물류비와 인건비 등 유통 전반에 걸쳐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하며 시스템 전반에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의류 등 공산품 뿐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올해 초에는 쿠팡의 신선식품 반품 시스템을 악용해 약 4개월 동안 허위 반품으로 3000여만원을 챙긴 20대 여성이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품질이나 배송 문제로 반품 신청이 들어오면 상품을 회수하지 않고 환불만 처리하는 쿠팡의 정책을 악용한 사례다. 이커머스 플랫폼이 속도와 편의성을 경쟁하듯 강화하면서 이를 악용한 ‘블랙컨슈머’의 반품 남용도 함께 늘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는 이를 막기 위해 반품 관련 정책을 점차 강화하는 추세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6월 무료 반품 정책을 폐지하고, 일정 횟수를 초과할 경우 반품비를 부과하는 식으로 약관을 개정했다. 쿠팡 역시 반복적인 반품 남용 고객에 대해선 판매자가 거래를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이 없도록 ‘셀러 보호 정책’을 시행 중이다.
다만 이런 조치들이 소비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도 깊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소비자는 단순 변심이라도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엔 자유롭게 반품이 가능하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적 검수 시스템 도입이나 이용자 이력 기반의 리스크 관리 등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악의적 반품을 막기 위한 고도화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