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예방의 설계, 맞춤형 예방의학

입력 2025-10-21 00:29

의학은 오랫동안 고장 난 몸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증상이 나타나면 병명을 붙이고 검사한 뒤 약을 정했다. 수술이 필요하면 메스를 잡았다. 예방도 있었지만 평균을 기준으로 한 집단 권고에 가까웠다.

맞춤형 예방의학은 이 공식을 뒤집는다. 기존 예방이 진단 이후 평균값에 맞춘 대처라면, 맞춤형 예방의학은 발병 전 예측과 개인별 맞춤 전략에 가깝다. 전자는 병이 생긴 뒤 속도를 늦추는 것이고 후자는 처음부터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이 차이는 이미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1티어(Tier 1) 유전질환이다. 보건 당국이 반드시 선별해 개입해야 한다고 지정한 유전질환 범주다. 여기에는 BRCA1과 BRCA2 유전자 변이로 인한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대장암 위험을 높이는 린치증후군이 포함된다. 이 질환은 가족력이 강하기에 가족 단위 선별검사를 권장한다. 한 명이 위험 변이를 가지고 있으면 가족 모두가 검사를 받고 미리 예방적 개입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흐름은 병원 현장에서의 유전체 데이터 환류 시스템이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대규모 유전자 검사를 시행해 실제 진료에 도움이 되는 변이가 확인되면 환자와 주치의에게 직접 알려준다. 환자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검진 시기를 앞당기거나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데이터는 다시 쌓여 임상 결정이 더 정밀해진다.

생활 습관에 대한 것도 바뀌고 있다. 개인별 혈당 반응 연구에서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반응이 달랐다. 어떤 사람은 바나나를 먹으면 혈당이 급등하지만, 다른 이는 빵을 먹을 때만 크게 오른다. 장내 미생물과 개인의 유전자 생활 패턴이 달라 생기는 차이다. 최근 임상시험에선 개인 반응을 고려해 식사 프로그램을 짠 결과 일반 권고식보다 훨씬 더 좋은 대사 건강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디지털 헬스 도구도 일상에 들어왔다. 손목 기기는 수면과 맥박 변화를 기록하고 피부 부착 센서는 실시간으로 혈당을 보여준다. 휴대폰은 활동량과 스트레스 패턴을 추적한다. 아직 정확도를 더 다듬어야 하지만, 이들 기기가 부정맥을 조기 발견하거나 생활습관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가 실제 보고되고 있다.

암 예방에서도 큰 전환이 시도된다. 다암종 조기검출 MCED 기술은 한 번의 혈액 검사로 여러 종류의 암을 동시에 찾아내는 방식이다. 현재 여러 국가에서 대규모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며 향후 국가 검진 편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진료실 풍경도 바꾼다. 예전엔 ‘체중을 줄이라’ ‘운동하라’ ‘건강검진 받으라’는 말이 전부였다. 이제는 개인 유전자·가족력·장내 미생물·수면·스트레스·직업과 환경까지 종합해 몇 달 뒤 계획을 설계한다. 가족력이 뚜렷한 사람은 젊은 나이에도 고지혈증 관리와 심장병 예방을 시작하고 암 위험이 큰 사람은 검진 시기를 앞당긴다. 혈당 반응이 예민한 사람은 자기 몸에 특히 불리한 음식 조합을 찾아내서 끊는다. 주 단위로 데이터를 확인하고 몇 달마다 전략을 조정하면서 경로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미래는 더 구체적이다. 개인의 종합 건강 점수, 일례로 다유전자 위험점수(Polygenic Risk Score)가 혈압이나 콜레스테롤같이 기본 활력 징후 지표처럼 쓰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여러 유전자 변이를 합쳐 질병에 걸릴 확률을 수치화한 것으로 어떤 질병에 얼마나 취약한 체질인지를 보여준다. 검진도 개별화된다. 위험이 큰 사람은 더 일찍 더 자주 검사를 받고 위험도가 낮은 사람은 간격을 늘리는 방식이다. 혈액 한 방울로 여러 암을 조기에 잡아내는 검사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새로운 검진 모델이 될 수 있다.

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유전적 조건을 바꿀 수 없지만 그 조건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생활 습관을 쌓아나갈지는 바꿀 수 있다. 평균을 향한 조언을 넘어서 내 데이터로 질병 예방을 설계하는 것. 이게 맞춤형 예방의학이며 이미 우리 곁에서 시작된 변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의 일상이 될 미래이기도 하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