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는 전 세계 판매량 ‘톱3’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요 시장별 사정은 녹록잖은 상황이다. 미국에선 계속되는 고율 관세가 발목을 잡고 있고, 중국은 현지 브랜드 틈바구니에서 활로 모색이 쉽지 않다. 일본시장 점유율은 증가세지만 판매량 자체가 적다. 2위까지 올랐던 러시아는 전쟁 여파로 3년 넘게 재진출을 못 하고 있다. 유럽 시장 성적표가 중요해진 배경이다.
1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 지역에 전시장을 열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로봇개 스팟을 배치하는 등 차량 판매를 넘어 현대차의 미래 기술력을 유럽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공간이다. 현대차는 이탈리아와 영국을 비롯해 유럽 각지에 신규 전시장을 적극적으로 세우고 있다. 현대차·기아 기업설명회(IR) 자료에 따르면 두 회사의 지난 2분기 유럽 판매량(도매 기준)은 약 29만4000대(현대차 16만1000대·기아 13만3000대)로 전년 동기(약 29만6000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지난달 오스트리아 판매량은 1966대로 1년 전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시장 점유율도 7.6%로 3위에 올랐다.
유럽은 친환경차 점유율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는 시장이다. 그런 유럽에서 현대차의 친환경차 위상도 크게 올랐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도 모토 운트 슈포트는 현지에 하이브리드 모델(HEV)과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PHEV)을 보유한 투싼을 친환경성 평가 1위에 선정했다.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아이오닉9은 ‘2026 독일 올해의 차’에서 ‘올해의 프리미엄 자동차’에 이름을 올렸다. 독일 출시 3개월 만에 거둔 성과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메르세데스 벤츠·BMW·아우디 등 고급 브랜드의 본사가 있는 독일에서 프리미엄차에 선정된 건 더 이상 현대차가 가성비 브랜드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도 유럽 시장에서 넓혀가는 중이다. 독일·영국·스위스에 이어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네덜란드 등에 진출할 계획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제조사 입장에선 마진이 적은 소형차 중심이어서 장기적으론 고급 브랜드 점유율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내년 출시 예정인 소형 전기차 아이오닉3로 유럽 친환경차 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생산 라인을 추가한 튀르키예 공장에서 생산해 운송비와 관세 등 부담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유럽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현지 생산 비율은 80%다. 한국과 인도(100%)를 제외하고 가장 높다. 이를 통해 전 세계 판매량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12%, 올해 14%, 2030년 15%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