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처럼 할 줄 알았는데”… 韓 독자적 관세협상에 당황한 美

입력 2025-10-20 02:06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뒤 귀국한 김용범(오른쪽)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이재명정부의 독자 노선 관세협상 태도에 당황한 분위기로 알려졌다. 정부가 과거 일본 사례를 뒤따르던 외교 협상 방식 대신 ‘국익 우선’ 원칙 아래 새로운 협상 질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온 실용·자주 외교의 연장선이지만 성공 여부에 따라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9일 “이번 협상은 한국이 일본의 뒤를 따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며 “관세협상이 타결되면 한국이 일본을 따르지 않는 첫 협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도 미·일 합의를 토대로 한국에 제안하면 빨리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태도에 다소 당황해했다”며 “과거라면 일본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면 한국도 비슷하게 따라가는 외교 행태를 보였겠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익 우선 기조 아래 실용외교를 강조해 왔다. 정부는 추후 다른 대외 협상에서도 한·미 관세협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 대통령은 국방, 문화 등 다방면에 자신감이 있다. 자주 국가로서 힘을 갖게 하겠다는 목표가 있다”며 “협상에 이런 기조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협상 단계마다 한국의 이해를 중심에 두며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협상 기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전례없이 대통령실 3실장을 비롯한 외교안보팀 전원을 수시로 미국에 보내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현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2시간가량 면담을 진행하고,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과 50여분간 의견을 교환했다. 협상에서는 미국이 주장하는 3500억 달러 규모 직접투자 방식을 두고 한국 외환시장 안정 문제 등을 설명하며 절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행정부 인사들과 별도 협의를 갖고 한·미 조선협력의 상징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협상 의제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출국길에 “이번 협상은 김 장관이 러트닉 상무장관과 주로 진행하게 된다”며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 기간이기 때문에 협상에 박차를 가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정부는 초기부터 대통령실 정책실과 안보실, 관계부처가 한 팀으로 움직여 왔다”며 “이번에는 미국 내에서도 재무부와 상무부가 긴밀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실장 방미 기간 수시로 보고를 받으며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새벽에도 김 실장의 보고를 받으며 협상 상황을 챙겼다”며 “주초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구체적인 후속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이날 오후 귀국해 이 대통령에게 유선보고한 뒤 후속 회의를 준비했다. 협상 진전 여부에 따라 관세·투자·환율 등 현안을 묶은 패키지 전략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일정 부분 진전을 이루거나 정상 차원의 결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