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 베이브 루스는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1914~1919) 투수이자 타자였다. ‘이도류’의 원조였던 루스조차 선발로 등판할 때는 타격 부담을 덜기 위해 9번 타순에 배치됐다. 그만큼 투타 겸업은 인간의 체력과 집중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경기 수가 훨씬 많아진 현대 야구에서 투타 겸업은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깬 선수가 있다. 루스 이후 100여년 만에 빅리그에 등장한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다. 그는 지난 18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 선발로 나서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1회초 삼진 세 개로 이닝을 끝낸 그는 더그아웃에 들어갈 새도 없이 곧바로 1번 타자로 타석에 서서 리드오프 홈런을 터뜨렸다. 이날 그는 투수로서 6이닝 무실점 10탈삼진, 타자로서 홈런 세 방으로 경기를 완벽히 지배했다. 이 두 기록을 동시에 세운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오타니가 처음이다. 만화로 그려도 ‘너무 비현실적’이라 지적받을 장면이었다.
이 경기는 꽤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그가 이전 경기들에서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기를 앞두고 팔꿈치 부상 이후 고수하던 실내 타격 루틴을 깨고 야외 타격 연습을 자청했다. 일본 언론이 속보로 전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슬럼프 탈출을 위해 변화를 선택했다. 그 결과, ‘투타 완벽’이라는 네 글자를 증명해 보였다.
그의 인성과 노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교 시절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에는 프로 입단, 메이저리그 진출, 사이영상 수상 등 세부 목표와 실천 항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인사 잘하기’, ‘구장 쓰레기 줍기’ 같은 생활 목표도 포함돼 있었다. 그에게서 보이는 건 승부욕보다 절제, 과시보다 품격이다. 데이터가 경기를 예측하고 기술이 기록을 분석하는 시대다. 그러나 루틴을 깨는 용기, 스스로를 단련하려는 의지, 동료와 팬을 먼저 떠올리는 마음은 인간만의 것이다. 완벽했던 오타니의 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