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은 일상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넉넉한 토요일이면 자연스레 장거리를 뛰었고 주일에도 1부 예배를 마치고 길 위를 찾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달리는데 이틀 연속 풀코스 대회에 나가면 어떨까. 연습처럼 달린다면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2006년 봄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틀 연속 풀코스에 도전했다. 4월 22일 함평 마라톤에서 우승했고 다음 날 지리산 남원 반달곰 마라톤에서도 우승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틀 연속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기록만 6번이다. 안 되는 건 없었다. 다만 아직 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마라톤은 긴 거리를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경기다.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한순간 마음이나 몸이 무너지면 기록은커녕 완주도 이룰 수 없다. 초반의 욕심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속도는 욕심의 그림자였다. 그래서 나는 구간별 목표 페이스를 계산하고 초반 10㎞는 일부러 늦게 달렸다. 그 5분이 후반의 생사를 갈랐다. 시간과 마음, 몸의 균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2016년엔 또 다른 실험을 결심했다. 아침엔 풀코스, 저녁엔 울트라 100㎞. 그 전날 잔업까지 마치고 새벽 심야버스를 탔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직 어둠이 남아 있었다. 24시간 사우나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첫 대회가 열리는 여의도로 향했다. 제21회 바다의 날 마라톤이었다. 한낮 기온은 30도를 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은 저녁도 있다. 욕심내지 말자.’
첫 반환점을 도는데 숨이 고르고 다리엔 힘이 가득했다. 어느새 선두로 올라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직 하루의 절반이 남아 있었다. 저녁, 북한강 울트라 마라톤이 이어졌다. 코스 절반은 갓길조차 없는 차도였다. 차량 불빛이 눈을 찔렀고 흙먼지와 더위, 하루살이 떼가 달리는 사람을 둘러쌌다. 손으로 벌레를 쫓으며 달렸다. 그 어둠 속에서 오직 내 숨소리와 심장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기도 같았다.
울트라 마라톤 참가자들은 대부분 나이도 많고 경험도 깊었다. 그러나 그날은 아무도 내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아침 42.195㎞, 저녁 100㎞ 거리. 총 달린 시간 8시간 53분 52초. 하루에 두 대회 연속 우승을 했다. 몸은 한계를 넘어섰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몸을 이끌었다. 고통의 끝은 벽이 아니라 문이었다. 그 문을 여는 열쇠는 언제나 믿음이었다.
나는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프로 선수가 아니다. 하루 9시간 노동을 해야 먹고 사는 현장 근로자다. 달리기를 핑계로 공정에 지장을 주거나 요령을 피운 적도 없다. 대회를 마치고 귀가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다음날은 무조건 출근했다. 이는 신앙인이 가져야 할 성실의 기본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한 길이었다.
달리기는 내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그건 하루하루를 통과하는 방식이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동적인 삶의 예배다. 호흡은 거칠고 땀은 흘러내리지만 지그시 눈을 감으면 마음은 점점 고요해진다. 어쩌면 고통은 신이 우리 안에 심어둔 가장 깊은 기도일지 모른다. 나는 그 기도를 달리며 완성하고 있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