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여 제품 한 곳에 초대형 매장 도입
고객 중심 대량개인화 첫 시도 평가
무료 클리닉에 장비도 저가로 대여
단순 판매 넘어 고객 문제 해결 앞장
고객 중심 대량개인화 첫 시도 평가
무료 클리닉에 장비도 저가로 대여
단순 판매 넘어 고객 문제 해결 앞장
조직표에 현장 직원을 최상단에 배치하고 최고경영자(CEO)를 맨 아래에 표기하는 기업이 있다. 전통산업이지만 디지털 혁신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기업이다. 창고형 소매업체지만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강조하는 이 기업은 1978년에 창업한 주택용 건축자재업체 홈디포다.
창업과 성장
홈디포는 1978년 버니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 등이 공동창업했다. 이들은 기존 주택용 건축자재 시장에서 고객이 제품별로 여러 업체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대형 매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원스톱으로 쇼핑할 수 있게 한다’는 비전을 세웠다.
1997년까지 CEO였던 창업자 마커스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급성장한 홈디포는 매장 2곳을 개점한 1979년 이후 불과 5년 만에 나스닥을 거쳐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1980년대 말 미국 최대 주택 수리업체로 성장했고 1990년대에는 캐나다를 시작으로 글로벌화를 추진했다. 마커스에 이어 공동창업자 블랭크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CEO를 맡았는데, 두 사람의 리더십이 홈디포 경영모델의 기반이 됐다.
2000년 GE 출신 로버트 나델리를 CEO로 영입해 인수·합병(M&A)과 글로벌화를 추구했고, 2005년 온라인 시장에 진출했다. 2007년 내부 출신 프랭크 블레이크가 CEO로 취임해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효율화에 주력했다. 2014년 내부 출신 크레이그 메니어가 CEO가 돼 온라인 관련업체 인수를 통해 디지털 역량을 강화했다. 현재 홈디포는 2022년 취임한 내부 출신 CEO 테드 데커가 자연재해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 홈디포는 2020년대 중반인 현재 2400개 가까운 매장과 50만명의 종업원, 1600억 달러 매출 등으로 주택용 건축자재 분야의 확고한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고객중심 경영의 선구자
창업 때부터 홈디포는 이익이 아니라 고객의 존경을 추구했다. 고객이 필요한 주택 건축과 개보수 관련 모든 제품 및 서비스를 최고의 가격과 품질로 한 매장에서 원스톱으로 제공하기 위해 5만여 가지 제품을 한 곳에서 판매하는 초대형 창고형 매장을 도입했다. 고객이 필요한 다양한 제품을 원스톱 쇼핑하는 것은 현재 아마존 등이 추구하는 고객 중심 대량개인화의 첫 시도다.
매장 직원이 단순 업무를 수행하는 기존 업체들과 달리 홈디포의 핵심 인력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매장 직원이며, 본부는 현장을 지원하는 보조 역할을 한다. 따라서 홈디포는 최소 2년 이상 경험을 가진 전문직원을 현장에 배치해 고객별로 고도의 자문을 제공한다.
고객은 모든 걸 대신해주길 원치 않아
홈디포는 고객과 상호보완적 분업을 추구한다. 고객은 모든 것을 기업들이 대신해주기를 원하지 않으며 특히 자신이 사는 주택의 건축과 개보수는 스스로 하고 싶어한다는 역발상적 관찰에 기반해 홈디포는 “자기 집의 건축과 수리는 직접 하라”고 선포한다. 개인마다 선호가 다르기 때문에 각 고객이 주체가 되는 것이 당연하며, 홈디포는 다양한 제품과 노하우를 제공해 고객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상호보완적 분업을 제시한 것이다.
이를 위해 홈디포는 ‘당신도 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돕겠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자재와 공구는 물론 전문적 자문과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CEO 블랭크는 “우리는 자재나 공구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이 주택 건축과 개보수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의 해결을 돕는 회사”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홈디포는 고객이 당면한 문제에 전문적 자문을 제공하는 무료 클리닉, 구매하기에 부담되는 장비의 저가 대여 등을 운영한다.
디지털 혁신과 옴니채널 전략
홈디포는 전통산업 기업이지만 디지털 혁신의 새로운 가능성에 적극적이다. 특히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매장 중 어디를 이용하든지 동일한 가치를 제공하는 옴니채널 전략을 위해 디지털 서비스에 총력을 기울인다.
‘원 홈디포’ 비전에 따라 온·오프라인 간 경계 없는 옴니채널을 추구하기 위해 온라인과 모바일 환경에서 문자와 음성으로 제품 검색과 주문을 가능하게 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미국 모든 지역에 이틀 내 배송하며, 온라인 검색과 주문 후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경험하고 최종 구매하도록 하며, 이 과정에서 2000여개 매장을 온라인 주문 제품의 수취센터로 활용했다. 그 결과 2020년대 중반 온라인 매출이 15%로 급성장해 전체 온라인 소매업체 중 최상위권에 자리잡게 됐다.
서번트 리더십과 직원 중심 조직문화
현장 종업원을 최상위에 배치한 역삼각형 조직표가 시사하듯 홈디포 조직의 중심은 현장 매장 종업원이다. 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이들의 성장과 성과를 돕는 ‘서번트 리더십’을 수행한다. 홈디포는 종업원이 최고의 역량을 습득하도록 지원하고 높은 자율적 권한을 부여해 셀프 리더십을 발휘케 한다. 이들은 상급자의 사전승인 없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하므로 현장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홈디포 종업원은 높은 애사심으로 유명하다. CEO를 포함해 모든 구성원이 직급과 나이에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며 높은 응집력과 친밀감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창업자 마커스는 기업 성공의 비결을 “CEO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로 조직을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데 경영의 초점을 맞추는 서번트 리더십을 주장했다.
홈디포 서번트 리더십의 대상은 인류공동체로 확산돼 2009년 ‘더 많이 아끼고, 더 많이 실천하자’는 친환경 슬로건을 선포했다. 초기에 산림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환경훼손이 우려되는 지역의 벌목을 금지하고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며 환경운동에 노력했다. 창업자 마커스는 개인적으로 비영리 자선재단을 설립했다. 2024년 작고할 때까지 재산 대부분을 의료연구와 어린이 복지에 기부하며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했다.
고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홈디포는 기존 창고형 소매업체의 표준화된 경영모델을 당연시하지 않고 고객과의 상호보완적 분업 관계를 구축하며 급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고객중심 비전과 핵심 가치는 철저히 지키지만 디지털 전환 같은 혁신은 적극 수용하며 창조적 혁신에는 전통과 첨단산업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고정관념과 달리 고객은 기업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기를 원치 않는다는 자기 고객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통찰력을 제시했다. 현재 한계에 봉착한 우리 기업들도 자기 고객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얼마나 깊고 정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고찰해봐야 할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명예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