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다시 부동산 디스토피아

입력 2025-10-20 00:33

공급 부족한데 수요만 막는 부동산대책…
모두가 집값 때문에 불행해질까 걱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서울시내 한 소극장에서 열린 ‘20·30 청년들과의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서 “여론조사를 보니 청년들이 임대주택에 살아도 괜찮다는 응답 비중이 조금 늘었다”며 공공주택에서 분양보다 임대 물량을 더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말 임대주택에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많은지 의문이지만, 그동안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과 거리를 뒀던 이 대통령이 문재인정부와 마찬가지로 청년 임대주택 확대를 언급한 점이 다소 의외로 느껴졌다. 당시에는 이 발언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뒤 돌이켜보니 한 달 전 대통령의 발언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10·15 대책의 핵심은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이 계속 오르니 앞으로는 은행빚 무리하게 내서 집을 사거나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려던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사다리를 걷어찬 격이다.

물론 자가 마련이 불발되더라도 실수요자에게 전월세(임대차)나 공공임대 등 선택지가 남는다. 그런데 서울 전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대출 규모를 줄이다 보니 기존 매매 수요가 대거 전월세로 옮겨가면서 임대차 불안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갭투자에 대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거나 선호 지역에 전세를 공급해주는 순기능이 있는데, 정부가 이번에 서울의 갭투자를 막으면서 가뜩이나 희귀한 전세 물량은 더더욱 줄게 생겼다. 정부가 앞으로 보유세 인상도 검토한다니 결과적으로 공공임대를 제외한 모든 선택지에 부담이 늘게 됐다.

그런다고 공공임대가 청년이나 실수요자에게 대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일단 공급량 자체가 한정돼 주거비 경감의 이점은 있지만 소득 요건 충족에 ‘뽑기 운’까지 없으면 언감생심이다. 실수요층 선호도가 큰 아파트는 공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고, 빌라 등은 기껏 지어놔도 실수요층에 인기가 없다.

가뜩이나 자재값 인상 등 공사비 문제로 여러 건설 현장이 멈춰선 마당에 정부는 산업재해를 줄인다며 사망사고로 영업정지가 세 차례 발생한 건설사는 문 닫게 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임대·분양 여부를 떠나 주택공급 자체가 하세월이게 됐다. 10·15 대책에서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서울·경기 지역에서는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대출규제까지 적용돼 재건축 사업이 더더욱 어려워졌다.

안 그래도 수도권 쏠림이 심한 상황에서 주택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경제위기가 오는 게 아닌 이상 집값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갈수록 각국 정부의 돈 풀기로 화폐가치는 내려가고 자산가치는 뛰는 상황에서 수도권 요지에 내 집 마련을 한 사람과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 사이 자산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고, 이런 자산 불평등은 결혼·출산 감소 등 여러 부작용을 낳고 사회 불안을 키운다.

흔히 ‘부동산은 심리’라고 하는데 이재명정부 또한 과거 민주당 정권과 마찬가지로 실수요자 심리 통제에 실패하는 전철로 가고 있다. 당장은 규제 여파로 매수세가 잠잠해질지 몰라도 전월세 불안, 규제지역 인근 풍선효과 등 부작용이 고개를 들면 그때 가서 ‘두더지 잡기’식의 추가 규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이미 시장에 퍼진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집값은 오른다’에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집을 못 사게 대출을 막는다’는 경험칙까지 더해지면서 앞으로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는 흐름이 더 거세질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할수록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수요를 누를수록 수요가 폭발하는 역설을 불과 몇 년 전 경험하지 않았나. 그렇게 모두가 부동산 때문에 불행해지는 ‘부동산 디스토피아’의 서막이 다시 오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종선 산업1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