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 간 ‘평화적 두 국가론’이 정부 입장으로 확정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북한이 2023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 간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한 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두 국가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두 국가론’은 여전히 적지 않은 논리적 허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한반도 긴장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시각의 문제다. ‘두 국가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북한의 우려와 경계심을 해소하고 남북 협력의 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자칫 한반도에서의 긴장과 대립 조성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북한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결과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북한은 그동안 우리가 미국과 함께 끊임없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핵전쟁 연습’을 수시로 진행했으며, 보수·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흡수통일을 기도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대응은 방어적 차원에서 정당성을 지닌다는 것인데, 올해 4월 ‘최현호’ 진수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양작전 해군’을 건설하겠다고 발언한 것이나, 주기적으로 ‘영토완정’을 공언하는 행태를 고려하면 북한이 군사력 운용에서 신중성과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100기가 넘는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한 데다 2030년까지 최대 300기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1만명이 넘는 병력을 파견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을 침공 위협에 직면한 체제로 볼 이들 역시 많지 않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해야 남북관계를 별개의 두 국가 관계로 인정하느냐다.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서명 이후 우리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로 규정했고, 이는 북한을 사실상 국가급 행위자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일반적 국가 관계에서는 상호협상 상대 자격 인정, 경계선 존중 및 도발 자제 등이 필요한데, 이것을 어겨온 것은 북한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중간단계인 ‘남북연합’은 영문 표기로는 ‘Korean Commonwealth’이고, 이 안에는 남북이 두 국가급 행위자로 공존하는 과정이 상정돼 있다. 일부에서 ‘남북기본협정’을 맺고 헌법상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지만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등 기존의 남북 합의도 무시한 북한이 만족할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평화적 두 국가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결국 북한이 주장하는 핵보유국 지위 인정,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 북한이 자신들을 변화시키려는 시도 자체를 ‘적대’의 근원으로 간주하기에 궁극적으로는 ‘햇볕정책’을 포함한 대북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도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형성된 두 국가 관계가 과연 바람직한가 생각해 보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유입되는 영향력과 정보의 통로를 일방적으로 막고 자신의 정체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 관계라기보다는 예속과 굴종 관계에 가깝다.
남북 간의 평화적 공존과 통일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논의될 수 있고, 지나친 한반도 긴장을 방지하자는 것을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러 면에서 정제되지 않은 ‘두 국가론’을, 그것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정책 모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