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맞는 작은 도움이 모여 인생은 굴러간다”

입력 2025-10-20 03:04
지난 7월 오랜 직장 KBS에서 명예퇴직한 김재원 아나운서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KBS에서 30년 넘게 간판 아나운서로 일하며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아들은 성실히 자라 제때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겉보기엔 남부럽지 않은 평탄한 삶만 산 것 같은 김재원(58) 아나운서지만 실은 굴곡진 삶을 헤쳐 왔다. 13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미래를 꿈꾸던 청년 시절엔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그러나 “그런 시절마다 필요한 만큼의 손길이 내 곁에 있었다”며 “100명의 1%의 헌신으로 내 인생이 굴러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 아나운서는 지난 7월 말 정년퇴임을 1년여 앞두고 KBS에서 명예퇴직했다. 그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낯선 세상에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면서도 “다시 취업준비생이 된 느낌, 와이파이 없이 여행지에 놓인 기분”이라고 했다. 요즘 그는 다양한 일에 도전하고 있다. 10월 말 기독교 방송 CGNTV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간증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스피치 강연 등 프리랜서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김 아나운서는 12년 동안 KBS 방송 ‘아침마당’을 진행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을 ‘과외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방송국까지 찾아와 인생 레슨을 나눠주신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가장 큰 축복”이라고 했다. 그런 고마운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이 12명을 낳아 기르는 엄마,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식사를 나누는 식당 사장, 아픈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아들에게 봉투를 건넸다. “간식 한 번, 밥 한 끼라도 한번 사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김 아나운서는 퇴직 전 11년간 집이 있는 마포에서 여의도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그는 “버스를 탈 때 느끼지 못한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걸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낼 수 있었다”며 “기체처럼 따라다니는 감정을 고체로 만들어 나쁜 상황 속에 내려놓고 오는 연습도 부단히 했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는 30년 6개월 직장생활을 ‘행복한 빛깔’로 기억했다. “슬프고 버겁고, 때론 억울했던 기억의 조각도 있었지만 전체의 색을 훼손하진 못했다”고 부연했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김 아나운서는 직장생활 중에도 신앙을 지켰다. 지금과 다른 예전 회식문화 속에서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교회 봉사와 해외 선교에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들 앞으로 모은 목돈으로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운 것을 계기로 현지 소년을 2011년 초청해 함께 지낸 경험도 있다. 이는 그와 가족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함께 밥 먹고 지낸 일상은 현지 아이의 성격도 바꿔놓았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어렵고 힘든 시기에 손을 내밀어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엄마의 빈자리는 이모, 고모, 교회 권사님들이 채워 주셨고 아버지가 편찮으실 땐 가족은 물론 선교사를 준비하던 친구까지 함께 도왔지요. 때에 맞는 작은 도움이 모여 우리의 인생이 굴러가는 건 아닐까요.”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