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국 정치와 교육으로 노벨 과학상 어려워

입력 2025-10-20 00:35

탁월한 천재가 받는 게 아니라
탁월한 대학이 노벨상 낳는다

美, 세계적 명문대가 주도하고
日, 도쿄대보다 지방대가 강해

'지식국가' 파워 모르는 정치'
정답 맞히기' 강요하는 교육
시대 뒤떨어진 한국 답답할 뿐

‘노벨상의 사회학’을 연구한 해리엇 주커먼은 ‘노벨상의 구조’가 있음을 밝혔다. 곧 탁월한 천재가 노벨상을 받는 것이라기보다 탁월한 대학이 노벨상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공교롭게도 세계 대학 랭킹과 거의 일치한다.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프린스턴대,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대, 도쿄대, 교토대 등 세계적 명성을 가진 대학들이다. 미국 대학은 1901년부터 2025년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 약 60%를 배출했다. 곧 노벨상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대학을 육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올해도 한국은 노벨과학상을 배출하지 못함으로써 전 국민이 또 한번 노벨상 콤플렉스를 겪었다. 올해 눈에 띄는 것은 교토대 출신 일본인 과학자 2명이 노벨의학상과 노벨화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27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대학을 살펴보면 교토대 10명, 도쿄대 6명, 나고야대 3명, 홋카이도대 1명 등이다. 이들 모두 일제시대 제국대학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일본의 수도에 위치한 도쿄대보다 지방에 위치한 교토대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더 많이 배출한 것이 매우 큰 특징이다. 한국으로 치면 제2의 국립대인 부산대가 서울대와 비슷한 수준의 대학이라는 뜻이다. 세계적인 대학 교토대와 인서울 대학에 한참 밀려 노벨상은커녕 인재도 끌어모으기 힘든 부산대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들과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의원들 중에 부산대나 전남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을까. 일본 지방에 위치한 교토대, 나고야대, 홋카이도대는 우리로 치면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와 같은 곳이다. 진심으로 이 대학들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워야 한다는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 교육감은 있을까. 기자들은 부산시장, 광주시장, 대전시장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또한 영남, 호남, 충청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물어보자. 예상컨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한국 정치인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 이들은 현대국가가 ‘지식국가’인지 모른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알 수 있듯 핵폭탄은 미국 대학 교수들이 만들었다. 인터넷, 반도체 설계 기술, 메신저 리보핵산(mRNA) 원천기술도 미국 교수들이 만들었다. 곧 대학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 자체를 한국 정치인들은 모른다. 둘째,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 보스턴의 루트128, 노스캐롤라이나의 리서치 트라이앵글, 오스틴의 실리콘힐스 등 지역경제의 핵심은 세계적인 대학과 인재인데 이 사실 자체를 한국 정치인들은 모른다.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는 정치인도 거의 없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은 반도체 공장을 짓기 전인 1982년에 실리콘밸리를 직접 방문했다. 야망은 야망으로 맞서야 하는데 한국 정치인들은 개인적 야망만 있지 국가적 야망이 없다.

한국의 입시 3관왕으로 천재라고 불리는 임지순 울산대 교수는 미국 연구실에 갔더니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자기와 같은 연구실에 있었던 로버트 러플린 전 카이스트 총장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엉뚱한 발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속으로 무시했는데, 나중에 노벨상을 받는 걸 보고 한국식 교육이 틀렸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한국 천재들은 일단 교과서에 나오는지를 확인하고, 미국 천재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입시에서 전국 1등을 하며 ‘공부의 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도 미국 대학원 시절 논문 주제를 찾기 어려웠다고 언론에 고백했다. 그는 한국식 정답 맞히기 교육은 구시대의 산물이며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천재들은 한국의 정답 맞히기 교육은 삼류 교육이고 이제는 끝을 내야 한다고 호소한다.

노벨상의 사회학은 노벨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노벨상은 개인적인 노력보다 대학 인프라에 의해 결정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 정치와 한국 교육이 노벨상이라는 일류를 낳기는 매우 어렵다. 도대체 일류는 무엇인가. 정답을 교과서에서 찾지 말라. 일류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