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무역 협상의 후속 논의에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의 집행 방식을 놓고 이견을 해소할 막바지 집중협상에 돌입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투자금 전액 선불’ 요구에서 선회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진지하고 건설적 분위기에서 협상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밝히느냐가 최종 관문이 될 전망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 빌딩에서 취재진과 만나 트럼프 행정부의 선불 요구와 관련해 “한국의 외환 사정상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베선트 장관에게 설명하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는 “베선트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에) 설득하고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며 “아직은 미국의 (선불) 철회 여부를 말하기 어렵다. 3500억 달러를 빠른 ‘업프론트’(선불)로 하라는 것이 미국의 강한 주장이라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 실무 장관들은 (한국 상황을) 이해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수용 여부에는 불확실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구 부총리는 제4차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IMF·세계은행 연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찾은 워싱턴DC에서 전날 베선트 장관을 만났다. 구 부총리는 대미 투자 총액을 줄일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양국 간 많은 얘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미국은 굉장히 강하게 (전액 투자를)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오는 31일부터 이틀간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까지 한·미 협상을 매듭짓는다는 목표로 미국 각료급 인사들과 집중적인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연간 최대 300억 달러 규모의 중장기 분산투자를 포함한 여러 협상안이 제시됐을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구 부총리는 ‘미국이 한국에 대두 수입을 요구하느냐’는 질문에 “협상 과정이 진행 중이어서 확인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김 실장,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이날 워싱턴DC 상무부 청사에서 약 2시간 동안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났다. 김 실장은 회의를 마친 뒤 “충분한 이야기를 했다”고 짧게 설명했지만 협상의 진전 상황을 언급하지 않았다. 회의를 앞두고 인근 덜레스국제공항에 입국하면서는 “지금까지와 비교할 때 양국이 가장 진지하고 건설적 분위기에서 협상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김 장관 등은 상무부 방문에 앞서 백악관을 찾아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과 50여분간 면담하며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기반한 조선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김철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