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어 나오는 차·사람들… “범죄조직 다급히 도망”

입력 2025-10-16 18:59 수정 2025-10-17 00:10
배달원들이 16일 오후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의 한 신축 범죄단지 출입구 앞에 줄을 서 있다. 이곳은 경비가 삼엄해지면서 신원 확인을 받은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했다. 시아누크빌 범죄단지 곳곳에선 조직원들이 현지 경찰 단속을 피해 도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16일 새벽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시내에 있는 차이나타운. 사기와 감금이 이뤄지는 범죄단지(웬치)로 알려진 건물 앞은 빠져나가는 차량들로 혼잡했다. 낡은 건물에선 사람들도 줄지어 나오고 있었고,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은 이들의 신원을 한 명씩 확인했다. 길거리에는 모니터 여러 대가 본체와 분리된 채 놓여 있었고, 남성 여러 명이 차량에 컴퓨터 부품을 챙기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캄보디아의 한 교민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도망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아누크빌의 범죄단지들에서 야밤에 도주하는 정황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정부가 합동대응단을 급파했지만 “한발 늦었다”는 게 현지에서 바라보는 대체적 시각이다. 현지에서 만난 한 캄보디아인은 “최근 캄보디아 경찰 단속이 심해진 데다 한국 정부와 언론이 현지 사건에 주목하는 상황을 범죄조직에서 눈치채고 다급히 도망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웬치 주변 경계는 한층 강화됐다. 5층 규모 웬치 입구 앞에는 배달원 10여명이 줄을 서 있었지만 밖으로 나오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비원에게 신원 확인을 받은 이들만 건물에 출입할 수 있었다. 차량이 들어갈 때도 트렁크까지 검사가 이뤄졌다.

폐건물로 위장한 것으로 보이는 웬치도 있었다. 외부는 회색빛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입구는 최근 설치한 듯한 출입 게이트가 있었다. 지하 게이트는 검은색 사복을 입은 경비원 2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현지인들은 이곳도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을 일삼는 범죄단지라고 추측했다.

기자가 이날 둘러본 시아누크빌에서 눈길을 끄는 건 20층 이상의 고층 건물과 호텔, 카지노였다. 간판에는 대부분 중국어 표기가 돼 있었다.

캄보디아 경찰은 온라인 사기에 가담한 한국인 59명을 17일 추방한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경찰은 “우리와 논의된 부분이 아니다”며 “(송환에 관한 양국 경찰 간)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시아누크빌 호텔 뒤로는 수상한 낡은 건물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건물들이 웬치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입구에는 여성 5명이 경비원에게 신원을 확인하고 쇠창살 회전문을 통해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아누크빌 범죄 실태가 알려지면서 이 지역에 입국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모습이다. 전날 기자가 탄 태국 방콕에서 시아누크빌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좌석 180개가 넘는 중형기였지만, 탑승객은 30여명에 그쳤다. 중국 여권을 들고 있는 승객이 많았고, 기내 곳곳에서 중국어가 들렸다.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고수익 미끼 취업사기 주의’라는 외교부의 경고 문자가 휴대전화로 날아왔다.

현지 항공사 직원은 “왕복 티켓을 끊지 않으면 입국이 제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아누크빌은 이날 0시를 기점으로 여행 경보 3단계인 ‘출국 권고’가 발령됐다. 현지 교민 B씨는 “범죄 단속이 본격화되면서 시아누크빌로 들어오는 사람은 적고, 떠나는 사람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보이스피싱사범 대응 범정부 태스크포스(TF)는 최근 캄보디아 등 해외에 체류 중인 보이스피싱 총책 20여명의 송환을 추진 중이다.


시아누크빌=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조민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