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캄보디아에서 고액 취업 사기로 감금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20대 남성 A씨는 귀국한 뒤 주변 지인들과 연락을 모두 끊었다. 프놈펜의 보이스피싱 조직에 있었던 A씨는 함께 일하던 한국인이 피가 날 정도로 맞는 장면을 매일 목격했다.
탈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A씨는 범죄조직의 추적을 피하려 프놈펜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도망쳤다. 돈도 여권도 없이 휴대전화만 들고 겨우 빠져나온 그는 한인회의 도움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극적으로 탈출한 지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1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캄보디아에서 구조돼 한국으로 돌아온 청년 상당수는 트라우마로 일상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32세 남성 B씨도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고액 취업 사기를 당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탈출 이후 불안증세가 심해진 그는 가족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은 채 방에 틀어박혀 있는 상황이다.
해외 취업 사기로 범죄 단지에 감금됐다 귀국한 이들 중 상당수는 지낼 곳이 없거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구직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에 범죄 이력이 있어 해외로 나갔던 경우는 복귀가 더욱 힘들다. 지난해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들어갔다가 몇 주 만에 탈출한 20대 남성 최모씨의 경우 마약 전과로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캄보디아 현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한 피해자는 캄보디아에 고액 알바를 하러 갔다가 권총으로 협박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런 일을 겪은 뒤에는 공황이나 우울증, 불안장애 등에 시달려 일상을 되찾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캄보디아 조직이 자신을 다시 찾을까 두려워 가족까지 전화번호를 모두 바꾸는 경우도 있어 외부에서 도움을 주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외교부가 이들의 심리 지원까지도 염두에 두고 어느 부처에서 총괄해서 담당할지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지 구출활동을 돕고 있는 관계자도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등 신고가 들어오는 기관들은 수사권이 없어 현지 경찰과 대동하는데, 경찰이 조직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경우도 있다”며 “또 남은 사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구출되면 신고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보복 폭행을 당한다”고 전했다.
한국인 납치·감금에 대응할 현지 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캄보디아 지역 치안 대응 계획’에 따르면 경찰은 현지 파견 경찰관 수를 기존 3명(주재관 1명, 협력관 2명)에서 8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납치·감금이 빈번한 시아누크빌에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하고 이 지역에는 경찰관 2명을 파견해 한국인 관련 사건을 전담할 계획이다.
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