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집행 방식으로 연간 최대 300억 달러 규모의 중장기 분산투자를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의 외환보유액과 수출 중심의 경제를 고려할 때 직접 현금투자를 길게는 10년에 걸쳐 집행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는 취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듭된 ‘선불’ 언급에도 불구하고 미국 협상팀은 정부에 “(일본과 다른)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답을 보내온 것으로 확인됐다. 양국 간 통화 스와프 체결 협상도 우회로를 통해 접점을 찾고 있어 한·미 협상이 중대 변곡점을 맞고 있다.
1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양국 장관 간 만남 등 협상 자리에서 한국이 1년에 감당할 수 있는 대미 현금 직접투자액으로 200억~300억 달러 선을 제시했다.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인 4220억2000만 달러의 4~7% 수준이다. 여권 관계자는 “1년에 많아야 300억 달러, 보통 20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뺄 수 없다는 얘기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며 “원자재가 중요한 수출 국가 입장에서 그 이상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국민일보에 “정부는 대미 투자를 일괄 지급하려고 한 적도 없고, 그런 식으로 협상 방향이 가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가 조달 없이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1년에 150억~200억 달러 정도라고 답변한 바 있다.
핵심은 외화 유출 충격을 완화·우회할 안전장치다. 분산투자 이외에도 개별 기업의 대미 투자금액을 패키지에 포함하는 방안, 직접투자 비중 조정 등이 거론된다. 달러화 대신 원화로 투자를 집행하는 방안이 언급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범위를 밝혔고 미국과 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 요구했던 한·미 통화 스와프의 경우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설명이 나왔다. 위 실장은 “통화 스와프라는 (미) 재무부가 하는 형태에 진전이 없고, 큰 의미를 두거나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구 장관은 15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한 직후 취재진에게 “(관세협상 관련) 아주 빠른 속도로 서로 조율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미국 측에서는 구체적인 날짜 언급까지 나왔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이견은 해소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며 “향후 열흘 안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오는 29일 방한해 30일까지 머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미 정상회담도 이 기간에 이뤄질 전망이다.
송경모 김혜원 이동환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