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에 뿌리내린 조직적 온라인 사기 범죄에 중국계 조직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의 최대 폭력조직 삼합회는 최근 한국인 대학생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캄보디아뿐 아니라 미얀마, 태국, 라오스 등 동남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계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지역의 범죄조직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과거 마카오에서 카지노산업으로 돈을 벌던 이들은 시진핑 집권 2기인 2018년 대대적 단속이 이뤄지자 동남아로 범죄 근거지를 옮겼다.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카지노 운영이 중단되면서 타격을 입은 이들 조직은 이때부터 온라인 사기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보이스피싱을 비롯해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가상화폐 투자 사기, 해외 취업 사기 등을 벌이는 범죄 단지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조직적 온라인 사기와 관련해선 삼합회 중 ‘14K’ 일파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부러진 이빨’로 불리는 지도자 완 콕코이를 필두로 14K는 동남아 전역으로 범죄조직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완 콕코이가 동남아에서 불법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며 2020년 3개 법인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조직 두목이 대기업 회장 행세를 하며 대규모 범죄단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1년6개월간의 추적 끝에 14일(현지시간) 자산 압류 등 제재 조치를 내린 프린스그룹 천즈(38) 회장이 대표적이다. 중국 출신으로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한 천즈는 사학재단을 운영하며 부동산 개발, 물류, 식음료 등 광범위한 사업을 전개했다. 캄보디아 정치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천즈 외에도 시아누크빌에서 활동한 쉬아이민, 둥러청, 셔스장 등도 겉으로는 멀쩡한 회사나 호텔을 운영하는 것처럼 위장했으나 건물 안에선 사람들을 납치, 감금해 사기행위를 강요했다. UNODC는 범죄 단지들이 기술창업 단지나 국제 비즈니스 허브, IT 파크 등으로 홍보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이 감금돼 각종 사기를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형태의 조직적 사기가 동남아뿐만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중동, 유럽으로 퍼지고 있어 전 세계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