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왕조를 구축했던 인천 신한은행은 최근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리빌딩을 고민하던 구단은 프랜차이즈 출신 최윤아 감독을 사령탑에 앉히는 결단을 내렸다. 명가 재건의 중책을 짊어진 최 감독은 "스포츠가 데이터 싸움이라고들 하지만, 전력상 열세인 팀이 강팀을 제압하는 승부가 나오는 것도 스포츠"라며 "뚜껑은 열어봐야 알고, 공은 둥글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최 감독은 사령탑 데뷔 시즌을 앞두고 팀 체질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만년 하위권 이미지가 굳어진 터라 선수단에 드리운 '패배 의식'부터 걷어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신한은행만의 농구 색깔을 입히겠다"고 선언한 그는 "성적을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너진 팀 문화만큼은 반드시 바꿔내겠다"고 강조했다.
지도자로 돌아온 ‘레알 신한’의 주역
신한은행은 지난 3월 최 감독을 구단 제8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1985년생인 최 감독은 남녀 프로농구 통틀어 최연소이자 WKBL 역대 네 번째 여성 사령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데뷔 시즌에 나선다.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신한은행 블루캠퍼스에서 만난 최 감독은 양쪽 코트에서 진행 중인 선수들의 슈팅 훈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이 보일 때면 선수들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직접 지도에 나섰다.
최 감독은 “연습할 때는 선수들에게 엄하게 대한다. 프로에서 잘하는 팀과 못하는 팀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늘 보낸 시간이 하루, 1주일, 1개월, 1년이 쌓이고 나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훈련 시간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는 기본 철학이 있다”고 전했다.
현역 시절 그의 커리어는 화려했다.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신한은행에서 뛰면서 팀의 7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모두 함께 했다. 2007시즌 겨울리그부터 2011-2012시즌까지 통합 6연패를 달성한 ‘레알 신한(레알 마드리드+신한은행)’의 주축 멤버였다. 당시 신한은행은 스페인 축구 명문클럽 레알 마드리드처럼 특급 스타들로 최정예 전력을 구축해 왕조를 구축했다. 최 감독은 2008-2009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2013-2014시즌을 끝으로 챔프전 무대를 밟지 못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벅찬 현실이다. 프랜차이즈 출신으로 팀에 애정이 각별한 그는 신한은행의 부활을 직접 이끌기로 했다.
최 감독은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마쳤던 팀으로 다시 돌아오니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팀을 제대로 만들겠다는 욕심, 멋지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크다”며 “최근 팀 성적이 떨어지면서 약체 이미지가 누적됐는데, 단기간에 바꾸기 쉽지 않겠지만 제 손으로 꼭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흔들리지 않겠다는 초보 감독
감독으로서의 여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프로팀과 국가대표팀 코치를 경험했지만 감독은 처음이다. 최 감독은 “코치와는 다른 자리라 그만큼 할 일도 많고 어렵다. 챙겨야 하지만 모른 척 해야 하는 일도 있고, 더 넓은 시야에서 팀을 바라봐야 한다”고 털어놨다.
자신에게 따라붙는 최연소·여성 감독 타이틀이 영광스럽지만 부담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최 감독은 “결과로 평가를 받는 게 프로의 세계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물론 이기면 좋은 평가가, 지면 나쁜 평가가 따라올 거란 점은 잘 안다. 타이틀이 따라붙기 때문에 제가 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16일 새 시즌 정규리그 개막전 상대는 박정은 감독이 이끄는 부산 BNK다. BNK는 지난 시즌 창단 첫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WKBL에서 여성 사령탑 맞대결이 펼쳐지는 건 처음이다. 두 사람은 WKBL에서 선수와 코치, 감독을 모두 경험한 산증인들이다.
최 감독은 “WKBL 출범 30년이 다가오는데, 여성 감독은 네 명뿐이었다. 그만큼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WKBL을 경험했고,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했다”며 “리그 이해도가 높은 건 지도자로서 하나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선수들에게도 분명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악바리 근성과 카리스마는 ‘선수 최윤아’를 대표하는 키워드였다. 168㎝의 단신 포인트가드였던 그는 뛰어난 경기 운영과 어시스트는 물론 악착같은 수비, 엄청난 승부욕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최 감독을 얘기할 때 2004년 대만 존스컵에서의 ‘발차기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국가대표팀의 19세 막내였던 최 감독은 비매너 플레이를 일삼던 대만 에이스 첸웨이쥐안의 주먹질에 발차기로 맞불을 놨다.
“승부욕이 강하다는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그 영상이 계속 남아 떠돌고 있잖아요.(웃음)”
끈질긴 농구가 목표… 변화는 진행 중
지휘봉을 잡은 뒤에도 그의 근성과 끈기는 그대로다. 선수들에게 그만큼 치열한 농구를 주문한다. 최 감독은 “농구의 기본기를 많이 강조한다. 코트 위에서의 태도와 전투력 또한 기본기 중 하나라 본다”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팀과 상대, 팬, 그리고 선수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힘줘 말했다. 넘어져도 빠르게 일어나 다음을 준비하는 농구, 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치는 끈질긴 농구를 보여주는 게 그의 목표다.
최 감독은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꼬리를 내리기 보다는 선수들이 스스로의 연습량을 믿고 긍정적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오늘 지겠다는 생각’을 갖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라며 “저 또한 ‘안 되는 건 없다’는 자세로 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 시즌 키 플레이어를 꼽아 달라는 질문엔 “우리 팀은 모두가 잘해야 하고,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 누구 하나 빠져 나가면 팀이 굴러갈 수 없다”고 답했다.
정규리그 개막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기본기 위주의 담금질을 했던 신한은행은 최근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에도 정규리그 5위로 봄 농구를 하지 못했다. 리그 전체로 보면 신한은행의 주축 선수들은 어린 편에 속한다. 대대적인 전력 보강이 이뤄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최 감독은 ‘우승’이라는 당찬 목표를 내걸었다. 그는 “목표를 낮게 잡으면 더 나아가지 못 한다고 생각한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며 “매 경기를 챔프전처럼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최 감독은 “선수들 각자가 훈련을 많이 하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예전보다 에너지 레벨이 많이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또렷한 팀 색깔이 안 나오고 있지만, 우리 팀이 점점 바뀌고 있는 건 맞다. 반드시 변화를 시키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용인=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