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기에 접어든 국내 게임업계가 법정 주 52시간 근로제를 현재의 위기를 부른 주요 배경으로 지목하자, IT 노조 측이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시간 부족 탓으로 돌린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식품노조 IT위원회는 16일 입장문을 내고 “일부 게임업계 경영진이 중국의 노동 문화를 언급하며 노동시간 유연화를 주장하고 있다”며 “중국의 ‘996’은 이미 중국에서도 불법으로 규정된 제도에 불과하다.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는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게임사들은 지난달 24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한·중 근로 환경을 비교하며 노동시간 유연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피땀(血汗) 문화’로 불리는 중국의 996 근무제는 ‘오전 9시 출근·오후 9시 퇴근·주 6일 근무’의 장시간 노동을 뜻한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임금도 낮아 기업들이 인력 운용에 대한 부담 없이 개발 총력전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 근로자 임금이 높고 주 52시간 근로에 묶여 중국 업체들과 제대로 된 경쟁을 하기 힘들다는 게 국내 게임사들의 주장이다. 주요 게임사 대표들은 지난 15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서도 한목소리로 52시간제 탄력 적용을 건의했다.
이에 맞서 노조 측은 “현재의 위기는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하지 못한 경영 프로세스와 전략 부재의 결과”라며 “유튜브·쇼츠 등으로 확장된 여가 콘텐츠 시장에 맞는 새로운 개발 구조를 마련하지 못한 경영 실패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그러면서 노동시간과 경영 성과 간의 상관관계를 따져보자며 문체부에 공식 간담회 자리도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간담회에서 게임사들이 요청한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해 “양면이 있는 것 같다. 고용된 젊은 청년들이 소모품으로 사용되고 혹시라도 버려지는 최악의 현상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어 “현행 노동법 안에서도 충분히 3개월, 6개월 집약적으로 가능한 부분이 있지 않냐”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이 전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