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연휴 단상

입력 2025-10-17 00:37

추석 연휴가 언제였던가 싶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휴 후유증을 잠시 걱정했지만 노트북을 열자마자 일상에 복귀했다. 어김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중에 잠시 달콤했던 연휴를 떠올려 보자면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집 앞 산책로, 영화관, 유원지에 가득했던 아이들의 모습. 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는데도 활동 시간이 달라 평소엔 보기 힘들었던 아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저출생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양 유모차에 탄 갓난아이, 어린이, 청소년이 거리에 가득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학교도, 학원도 쉬는 연휴에 아이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거리를 누비며 뛰어다녔다.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와 가족들의 고됨도 느껴졌지만, 다들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번째는 마치 휴양지에 온 것처럼 밝은 사람들의 표정. 평일 여의도나 광화문 거리에서 마주쳤던 쌀쌀한 표정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웃는 얼굴과 너그러운 말투가 가득한 풍경은 어쩐지 생경하기까지 했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았던 버스 기사님과의 인사,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과의 명절 인사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휴양지에서나 경험했던 일상의 친절함을 연휴의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 낯설었다.

세 번째는 ‘추석 연휴 쉽니다’를 내건 상점들. 짧은 명절이나 징검다리 휴일에 쉬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며칠이라도 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영업자에게 휴식은 사치라지만, 긴 연휴에 잠시나마 쉬는 건 용납할 만한 사치가 아닐까 싶었다. 대개 휴일은 쉬는 사람 따로, 일하는 사람 따로여서 불공평하기 마련인데 긴 연휴가 기울어 있던 무게추를 조금이나마 평행에 가깝게 하는 듯싶었다.

내수 경제 활성화의 관점에서 볼 때 임시공휴일을 포함한 연휴 기간은 소비 증대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고빈도 데이터를 통해 본 날씨·요일의 소비 영향’ 보고서에서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소비가 잠시 늘더라도 그 이후에는 사람들이 지갑을 닫아 장기적으로는 소비 증대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임시공휴일을 지정했을 때 전체 연휴 기간을 앞두고 카드 사용액이 증가했지만, 연휴 이후에는 다시 감소하는 경향이 관찰된 것이다. 일평균 카드사용액은 임시공휴일이 포함된 명절 연휴 시작 전에 10% 이상 증가했다가 연휴 종료 후 5~8% 감소했다.

다만 숫자로 표현되기 어려운 삶의 질은 조금 나아졌을지 모른다. 한국은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근무제로 경제력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낮다.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비 한국이 23.1일 더 일한다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정부는 연도별 공휴일 편차와 징검다리 휴일로 여가시간이 부족하고 휴식에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대체공휴일을 도입해 확대하고 있지만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효율적인 휴식이 어렵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휴식 방법은 대체공휴일 확대와 요일제 공휴일 적용이다. 미국의 ‘월요일 공휴일 법’이나 일본의 ‘해피 먼데이 제도’, 중국의 ‘황금연휴제도’ 등처럼 예측 가능한 연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성인의 날이나 경로의 날 등 공휴일을 월요일로 지정해 주말에서 월요일로 이어지는 3일을 연휴로 지낸다. 한국도 지난 정부 때 요일제 공휴일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지만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연휴라는 축복에 일상의 풍경이 바뀔 정도라면, 휴일을 내수 활성화라는 정량적 관점으로만 보기보다 삶의 질이라는 정성적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연휴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한 풍경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심희정 산업1부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