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은행나무를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혈통”이라 불렀다. 공룡시대(약 2억 7000만 년 전~1억8000만 년 전)부터 존재해오면서 공룡이 멸종하고 대륙이 갈라질 때도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이 사라진 뒤에도 ‘Ginkgo biloba’ 단 하나의 종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인간도 혈통 보존에 이바지했다. 중국 동부지역의 사찰에서 씨앗을 거두고 묘목을 돌보며 명맥을 이었다.
한국에서 한때 은행나무는 도시의 자랑이었다. 병충해에 강하고 공해에도 끄떡없었다. 가을이면 황금빛 잎이 거리를 덮었다. 시민들이 기관지에 좋다는 열매를 도로에서 마구 털자 사고를 우려한 지자체들은 채취 일정을 잡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은행에서 나는 악취와 도시 미관 저해를 이유로 ‘불청객’으로 전락했다. 2019년 이후 지자체들이 앞다퉈 암나무를 베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접붙임을 하고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공원 주변 도로도 암나무 제거가 한창이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 식물이다. 암나무가 사라지면 수나무 생식기관의 비활성화로 이어지고 나무의 호르몬 균형에도 영향을 준다. 이는 유전적 다양성 훼손으로 이어진다. 일본에서도 이런 환경에서 수나무 수명이 단축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유전적 단일화, 즉 수나무들끼리 닮아가면 같은 병충해에 함께 쓰러질 수도 있다. 냄새를 피하려다 도시의 숲을 잃는 셈이다.
은행 열매는 인간에게만 불쾌할 뿐, 까치·청설모·들쥐에게는 귀한 먹이다. 암나무가 사라지면 도시 생태계의 먹이 망이 끊기고, 새소리마저 사라진다. 게다가 암나무는 수관이 넓어 그늘과 습도를 유지한다. 이들이 줄면 도시는 더 덥고, 더 메마른 곳이 된다. 냄새는 줄었지만, 온도는 올라가는 것이다.
냄새 나는 열매, 조금 자란 잡초를 비정상으로 보는 사회. 자연의 불편함을 지워갈수록 사람의 여유도 함께 사라진다. 공룡시대를 버틴 나무가 사람의 톱에 쓰러진다니, 아이러니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