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덕 (11) 멈추지 않는 믿음의 호흡으로 ‘Sub-3’ 300회 달성

입력 2025-10-17 03:03
심재덕 선수가 2018년 월드런 마라톤대회에서 300번째 서브 스리를 달성하는 모습.

42.195㎞, 풀코스 마라톤을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기록을 서브스리(Sub-3)라고 한다. 아마추어에게는 꿈의 기록이다. 최근 달리기 인구가 늘고 젊은 주자들이 늘었어도 여전히 대회 참가자의 약 1% 정도만 그 벽을 넘는다.

나는 1995년 첫 도전한 춘천 마라톤에서 2시간 39분 05초로 첫 서브스리를 달성했다. 그때는 서브스리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대회도 손에 꼽을 만큼 적어 1년에 한두 번밖에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마라톤 붐으로 대회가 늘어나면서 기회도 많아졌다. 그 덕에 14년 만에 서브스리 100회를 달성했다.

2008년 8월에 열린 제3회 사천 노을 마라톤 때였다.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는 초저녁 초전공원을 출발해 어두운 길을 달렸다. 한여름 대회에서 2시간 29분 45초, 내 역대 최고 기록이자 서브스리 100번째 완주라는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우승보다 벅찼던 건 달려온 시간의 무게였다. ‘한계는 없다. 내 한계는 내가 정한다’는 신조가 그날 내 몸에 새겨졌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지만,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은퇴할 때까지 완주한 풀코스가 41회였다. 2008년 당시 서브스리 100회 달성자는 내가 처음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전국에 31명뿐이다.

서브 스리 300회 완주 축하패.
모든 대회를 서브스리로 완주한 건 아니다. 초반 오버페이스와 잘못된 식이요법으로 후반에 체력이 저하되고 의욕도 상실해 3시간을 넘기며 걸어서 완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매 순간 매 경기 최선을 다해 달렸다. 정직하게 완주한 결과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꼴찌든 일등이든 최선을 다했으면 이미 충분했기에 결승선을 넘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첫 서브스리 이후 14년 만에 100회, 그로부터 4년 반 만에 200회, 다시 4년 반 만인 2018년 1월 거센 한강 바람을 뚫고 300번째 서브스리를 달성했다. 누군가에겐 과한 집념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겐 주어진 생의 언어였다. 지독한 열정이 기록을 만들었고 그 기록이 다시 나를 살렸다.

2010년은 내 마라톤 인생의 절정기였다. 한 해 동안 무려 28회의 풀코스를 달려 우승만 17회를 달성했다. 그중 동아일보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개인 최고기록 2시간 29분 11초를 달성했다. 이는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운 올림픽 최고 기록보다 8초가 빨랐다. 해외 원정을 나선 트레일 러닝 대회에서도 세 번 우승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대회는 항상 새롭게 다가왔다. 대회의 날짜, 장소에 따라 계절과 기후도 다르기 때문에 경기 중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변수에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해도 탈진해 대회를 포기하거나 너무 추워서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지난 시간을 추억으로 남기고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마지막 호흡과 그 끝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시작. 지금까지의 세월보다 앞으로 달릴 날이 더 많기를 바란다. 70세가 되는 해, 서브스리 500회를 완주하길 소망한다. 그건 단지 기록이나 숫자가 아니다. 나를 이끌어온 신앙의 증거, 멈추지 않는 믿음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