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목사인 내가… 정말 미안합니다”

입력 2025-10-18 03:15
목회자도 어떤 선택 앞에서 잠시 한쪽 눈을 감고 편한 길을 가고 싶은 유혹에 흔들릴 수 있는 인간이기에 스스로 ‘이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바른 선택일까’ 질문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챗GPT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싶은 순간이 있다. 모른 척해버리면, 외면해버리면, 잠시 마음이 편할 것 같은 순간. 내 신앙의 양심은 작은 속삭임으로 ‘안돼’라고 말하지만, 세상의 소음은 ‘괜찮아, 다 그렇게 살아’라며 달콤하게 유혹한다.

사모로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도 그런 유혹은 슬그머니 찾아온다. 이를테면 새벽기도에 가기 싫은 날, 알람 소리에 재빨리 일어나는 남편과 달리 못 들은 척 눈을 더 꾹 감는다. ‘오늘은 주님도 이해해 주시겠지’라며 따뜻한 이불 속을 더 파고든다. ‘워킹맘의 고단한 삶, 주님도 아시잖아요’라는 합리화와 함께 말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교회마다 인사이동이 한창이던 어느 해. 남편이 새로운 교회에 부임한 지 불과 2주쯤 되었을 때였다. 그때 평소 존경하던 목사님의 교회로부터 부목사로 부임할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 대형교회였다. 중소형 교회에 막 부임한 터라 더 나은 환경을 떠올리니 나 역시 마음이 설렜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눈 한 번만 딱 감고 옮기면 안 될까”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럴 수 없다”며 고개 저었다. 그의 단호함이 야속했지만, 그 선택의 무게를 알기에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훗날 내가 그 일을 떠올리며 아쉬워할 때면 남편은 “그때 눈 한 번 찔끔 감아볼 걸 그랬나”라고 농담처럼 답하곤 한다. 그 말속에는 목회자도 솔깃한 유혹 앞에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처럼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알기에, 때때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목회자들을 보면 마음이 더욱 무겁다. 얼마 전 한 개척교회 목사님이 더 좋은 청빙 제안을 받고 교회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한 성도들을 두고 떠나느냐 남느냐의 기로에서 그는 결국 눈을 감는 선택을 했다.

‘그럴 분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큰 실망이 밀려왔다. 그의 수많은 고민은 충분히 짐작됐지만, 그럼에도 후임자도 세우지 않고 떠나는 모습은 씁쓸했다. 목회자의 ‘눈 감음’이 남은 성도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지켜보며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맴돌았다.

사모이자 기자로 살아오며 수많은 목회자를 만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는 모습에 감동할 때가 많지만, 때때로 신앙의 양심보다 눈앞의 이익 앞에 쉽게 눈을 감는 이들도 본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들 앞에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라”(롬16:19)는 말씀처럼 마음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기를, 여전히 아파하고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길 나는 소망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온 ‘눈 한 번 감은’ 목회자들 이야기에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던 어느 날, 평소 교제하던 은퇴 사모님을 찾아가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현실적인 조언을 기대했는데 내 이야기를 듣던 사모님 곁에서 책을 읽고 있던 원로 목사님이 책을 덮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목사인 내가, 정말 미안합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예상치 못한 목사님의 사과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며 눈물이 터졌다. 어쩌면 이 시대 목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합니다’ ‘제 실수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솔직한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때마다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지금 잠깐 눈 감는 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바른 선택일까.’ 눈을 감아 얻는 안락함보다 눈을 뜨고 주님 앞에 바로 서는 순종에 더 깊은 평안이 있음을 믿는다.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모든 게 편할 것 같은 바로 그 순간, 믿음으로 눈을 돌리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 10:9)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