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남은 언어

입력 2025-10-17 00:33

유튜브 알고리즘에 ‘간다가와’가 떴다. 일본 포크 듀오 가구야히메의 곡이었다. 기타의 잔잔한 선율이 방 안을 채웠다. “당신은 이제 잊었을까요.” 노래는 그렇게 시작했다. 붉은 수건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비누가 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목욕탕을 나서는 젊은 연인들. 가난했으나 다정했고, 다정했기에 두려웠던 시절. 그 온기가 남아 있는 이별의 노래였다. 그 멜로디를 듣는 순간, 몇 달 전 리애상과 마주 앉았던 초밥집의 공기가 되살아났다. 그가 약속 메일 끝에 ‘근처에 간다강이 있어요’라고 썼던 문장 때문이었다.

그 곡을 들으며 나는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시대의 그늘 속에서도 사랑으로 하루를 버티는 옛 노래. 간다가와가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는 노래라면, 해바라기는 막 시작된 사랑의 다짐에 가깝다. 한쪽은 떠난 사람의 반지를 바라보며 과거를 만지작거리고, 다른 한쪽은 그 반지를 맞추러 가는 현재를 노래하는 듯하다. 방향은 다르지만 두 노래는 한 지점을 향한다. 인간이 관계를 통과하며 시간의 유한성을 배운다는 점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한순간 머물다 사라지고, 그 사라짐을 통해서만 우리는 시간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불완전한 기억의 파편을 남긴다. 나는 언어로 그것을 줍는다.

그 공명 속에서 나는 리애상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 같다. 우리의 시간도 짧았지만 충분했다. 시간은 초밥 레일 위를 달리던 접시처럼 빠르게 지나갔으나, 또렷하게 남았다. 멀어진 사람을 다정히 기억하는 일과 지금을 살아내는 일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거리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을 통과한다. 두 노래는 그 경계에서 울린다. 실재보다 오래 남는 것은 언어인가 보다. 노래 가사가 그러하듯, 누군가를 떠올리면 표정이나 몸짓이 먼저 떠오른다. 언젠가 리애상이 “맛있어”라며 미간을 찌푸렸던 그날처럼.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