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 228장(통28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 :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였습니다. 유월절에는 이스라엘 남자라면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속 사람들은 성전에 오를 수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 부정하게 여겨진 자들은 유월절 자리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들을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성전에 나아갈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성전이 되신 것입니다. 예배할 수 없는 자리에 예배가 임하고 절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떡이 나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로 몰려온 사람은 성인 남자만 5000명, 여자와 아이까지 합치면 1만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제자 빌립에게 물으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는 시험이 아니라 깨달음의 질문이었습니다. 빌립은 곧 계산합니다. “200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합니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성인 남자만 5000명이 모인 곳에서 200명만 하루 치 일당을 내면 됐으니 그리 큰돈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계산이 아닌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일하십니다. 안드레가 말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가진 ‘적음’을 통해 ‘넘침’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에 축사하셨습니다. 그 떡은 모두와 나눴고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라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제자들이 거둬 보니 열두 바구니가 찼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단순히 힘 조절을 실패한 게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배부른 사람들을 위해 남기신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오지 못한 사람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남기신 것입니다.
남은 떡은 버릴 음식이 아니라 나눌 사명이었습니다.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이 그 떡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그렇게 보내십니다. “너는 이미 은혜를 경험했으니 이제 그 은혜를 나누어라.”
교회는 기적을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기적을 흘려보내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명절에도 성전에 오르지 못한 자리를 찾아오셨고 사람들이 불가능이라 말한 200데나리온의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풍성함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의 마지막에 열두 바구니를 남기셔서 우리가 세상 속으로 다시 나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소비자가 아니라 은혜의 전달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바구니 안에 남겨진 감사와 간증, 사랑, 위로를 가지고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 열두 바구니의 은혜를 들고 세상 속으로 파송되는 하나님의 사명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 주님, 연약한 우리에게 찾아오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의 작은 것도 풍성한 은혜로 채우시고 세상에 흘려보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요한 목사(서울 송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