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으러 왔다가 더 깊은 수렁… 감금 한국인 구조 험난

입력 2025-10-16 02:06
오영훈 부산 서부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달 21~24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촬영한 범죄 단지 모습. 오 과장은 “호텔이나 리조트에 마련된 범죄 단지에 4~5m 높이의 담벼락이 있고 경비병이 입구를 지켰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캄보디아 범죄 단지 인근에서 레지던스를 운영하던 교민 A씨는 올해 초 감금됐다 탈출한 B씨를 구조했다. A씨는 숙식과 긴급여권 발급비, 항공료까지 마련해 B씨의 한국행을 도왔다. 그런데 몇 주 뒤 B씨가 다시 A씨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사이 B씨는 한국에서 캄보디아로 돌아와 범죄에 가담했고 다시 도주 중이라고 했다. B씨는 도주 중 연락이 끊겼다. A씨가 그를 다시 본 건 인천국제공항에서 한국 경찰에 압송되는 모습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위기에 처한 수백명을 도왔다는 A씨는 “허탈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15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한국인을 구조해온 선교사와 한인회 관계자들은 범죄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B씨 사례처럼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가 제 발로 캄보디아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갇힌 한국인 중에는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렀거나 많은 빚을 진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 전언이다. 이들은 높은 급여와 항공료, 숙식을 제공하는 일자리 공고를 보고 캄보디아행을 택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보이스피싱이나 연애 빙자 사기(로맨스 스캠) 같은 범죄에 연루되면서 범죄 단지를 빠져나오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A씨는 “한국에 있는 문제에 더해 캄보디아에서도 빚이 생기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며 “개인적으론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어도 한국에 있는 가족 등이 피해를 볼까 봐 안 돌아가려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선교사 C씨도 “캄보디아에 돈을 벌기 위해 오는 한국인 중에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가짜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탈출 시도 과정에서 저항하면 폭행뿐 아니라 고문 등을 당하기도 한다. 선교사 D씨는 “캄보디아에서 취업 사기로 일하던 젊은 여성을 구조해 택시에 태워 대사관으로 보낸 적이 있는데 다시 범죄 단지로 돌아갔다”며 “알고 보니 범죄자들이 과거 감금됐을 때 찍은 모욕적 영상 등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범죄 단지에서 붙잡힌 사람들은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 등 범죄 ‘실적’에 따라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단지에선 주 1회 시내에서만 돈을 쓸 수 있게 허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대부분 카지노 등에서 탕진해 빚이 더 쌓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C씨는 “범죄조직이 한국인을 카지노로 데려가 다음 월급으로 갚으라며 돈을 빌려줘 빚더미에 앉게 만든다”며 “이런 경험이 있는 한국인 일부는 탈출 후에도 큰돈을 벌 허황한 욕심에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한인회 관계자는 “한국에서 조사받고 캄보디아로 돌아와 구속되거나 중간 모집책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귀국을 거부하는 이들도 일단 한국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범죄 단지 경비가 더 삼엄해지면서 현지 구조활동은 험난한 상황이다. 실제로 현지 선교사 E씨는 지난 14일 밤 캄보디아 시하누크빌 범죄 조직에 수개월째 감금된 20대 한국인 구조를 준비했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취업 사기로 입국했다가 갇혀 있다고 SOS를 친 그는 끝내 밖으로 나오기를 주저했다.

그가 갇힌 범죄 단지에서 외부로 통하는 길은 현지 인원들이 24시간 봉쇄한 상태였다. E씨는 “고심 끝에 D-데이를 잡고 접선 장소까지 정했지만 경비가 예전보다 삼엄해지면서 다시 날을 잡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난 7일에는 한국인 여성 1명이 캄보디아 국경 인근 베트남 모처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도 발생했다. 경찰은 인근 범죄 단지의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과의 연관성 등을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까지 현지 송환 대상자 63명 가운데 2명의 송환이 완료됐다. 경찰은 나머지 송환 절차도 신속히 추진할 예정이다. 캄보디아 법원은 지난 8월 사망한 한국인 대학생에 대한 양국 공동 부검을 공식 승인했다.

정부는 이날 ‘캄보디아 정부합동 대응팀’을 급파했다. 대응팀은 외교부와 법무부, 경찰청 인사로 꾸려졌으며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할 예정이다.

조민아 유경진 김이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