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한화오션 미국 자회사 제재 발표 이후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미·중 통상 갈등의 유탄이 언제든 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제재 명분으로 ‘미국 정부 조사 활동에 대한 지지와 협조’를 들고 나오면서 향후 미·중 충돌 격화 시 제재 대상이 조선업뿐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4일 한화쉬핑 등 한화오션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며 “미국 정부의 (무역법 301조) 관련 조사 활동에 협조하고 지지해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에 위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이들 자회사는 중국과 사업적 연관성이 적은 곳들이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의 제재 리스트에 오른 건 한화오션이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 프로젝트’의 선봉에 선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제는 마스가 프로젝트에 한화오션뿐 아니라 HD현대,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모두 참여를 약속했다는 점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할 경우 중국이 다른 조선업체로 제재 대상을 확대하거나 배관, 펌프, 밸브, 전기장치 등 중국산 부품들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15일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것”이라며 “미·중 패권 경쟁으로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당분간 기업들도 (마스가 프로젝트에) 적극 나서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LS증권도 “이번 제재를 시작으로 중국의 제재 조치가 미 해군과 협력 중인 한국, 일본 등 다른 조선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선주사들의 한국산 선박 발주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화그룹 역시 긴장하는 분위기다. 당장 한화오션 미국 자회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제재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계열사 사업에 대해 중국 측이 견제나 보복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마스가 프로젝트를 한·미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했던 만큼 국익 차원에서 이에 참여했던 기업의 피해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제재가 반도체나 배터리 등 다른 전략 산업들에 대한 중국 견제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미국 칩스법에 따라 미국 내 파운드리(위탁생산) 등 생산시설 구축을 진행하거나 계획 중이고,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3사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따라 미국 내 생산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이번 사례는 중국이 미국뿐 아니라 미국 정책에 동참한 우방국에도 견제의 칼날을 보인 첫 사례”라며 “희토류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핵심 광물에 대해서도 수출 허가 보류나 심사 지연 등 기업들의 애를 태우는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선 허경구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