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정부가 인신매매한 노동자를 감금·고문하며 온라인 스캠(사기) 조직을 운영한 캄보디아 기업과 중국계 경영자를 제재했다. 한국인들이 캄보디아에서 당한 것과 유사한 범죄를 미국·영국 정부가 1년6개월 전부터 추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법무부와 재무부는 14일(현지시간) 캄보디아 기업 프린스그룹과 천즈 회장을 제재하고, 그의 범죄 수익금 세탁에 활용된 150억 달러(21조320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 12만7271개를 압류 조치 중이라고 밝혔다. 뉴욕 연방검찰은 천즈를 온라인 금융사기 및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했으며 법무부는 그의 비트코인을 몰수하기 위한 별도의 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범죄 수익금 몰수 규모로는 사상 최고액”이라고 설명했다.
재무부는 프린스그룹을 ‘초국가적 범죄 조직’으로 규정하고 이 기업과 천즈에 대해 146건의 제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프린스그룹은 사기로 벌어들인 수십억 달러로 부동산과 금융,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하는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1987년 중국에서 태어난 천즈는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했다. 캄보디아에선 2023년부터 3년 연속 ‘올해의 기업가’로 선정됐고, 최근 7년간 400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자선사업가로 유명하다. 이런 천즈의 범죄 행각과 은닉 자산은 미국 재무부와 영국 외무부의 1년6개월에 걸친 공조로 밝혀졌다.
뉴욕 연방검찰은 천즈와 공범들이 수백만개의 휴대전화 번호로 세계 피해자들에게 사기 행각을 벌였으며, 이런 사업장이 캄보디아에만 최소 10곳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중 2곳에선 1250대의 휴대전화로 7만6000개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운영하며 허위 투자를 제안하거나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현혹해 송금이나 암호화폐 전송을 유도했다. 사기에 동원된 노동자들도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구타·고문에 시달린 피해자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천즈가 한 노동자에게 문제를 일으킨 동료에 대한 구타를 승인하면서 ‘죽을 때까지 때리지는 말라’고 주문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프린스그룹은 범죄 수익금으로 레저·엔터테인먼트 기업 진베이그룹을 설립했고,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엑스와 프린스은행도 운영했다. 계열사 골든포천리조트월드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에 있는 대규모 온라인 스캠센터를 ‘기술 단지’로 위장해 운영했다. 천즈는 공범들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1200만 파운드(227억원)짜리 저택과 9500만 파운드짜리 사무용 건물도 사들였다. 이들 법인과 자산은 모두 미국·영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캄보디아 스캠센터에서 탈출한 피해자들은 전기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며 “한국에서도 자국민 학생이 캄보디아에서 사망한 사건이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