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中 고래 싸움에 새우등 신세 된 한국 기업

입력 2025-10-16 01:30
한 화물선이 지난 13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항에 입항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14일부터 상대 선박에 대한 입항수수료 부과에 들어가는 등 양국 간 무역 갈등이 해운·조선업으로 번졌다. 중국은 이날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에 제재 조치를 내렸다. 갈등의 유탄이 한국으로 튄 것이다. AFP연합뉴스

중국이 그제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제재한 것은 미국의 대중 견제에 대한 보복이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4월 중국 선박의 미국 항구 입항에 거액 수수료를 부과하는 규제 조치를 발표했고, 그 유예기간이 끝나 시행되는 날 중국의 제재 조치가 나왔다. 미국과 싸우면서 미국을 겨냥해 꺼낸 반격 카드임이 분명한데, 한국 기업이 그 타깃이 됐다. 미·중 고래 싸움에 한국이 새우등 터질 신세가 되는 상황이 현실로 닥쳤다.

중국이 한화를 택한 현실적 이유는 미국의 대중 규제에 맞불을 놓을 만한 미국 조선·해운 기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마스가 프로젝트(한·미 조선 협력)’의 핵심적인 한국 기업을 사실상 ‘미국 조선업’과 동일시하는 시각이 제재에 담겨 있다. 한화가 그만큼 미국 조선업 재건에 중추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인 동시에, 미·중 대결 구도에서 부당한 피해를 당할 위험도 상존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해군력 증강과 직결된 조선은 무역을 넘어 군비 경쟁의 안보 영역이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중국이 한화 제재에 담은 메시지는 한국을 향한 ‘경고’ 성격이 짙다. 미국과 밀착하는 수위에 따라 제3국이라도 보복 칼날을 들이대겠다는 뜻이 담겼다. 미·중 대결의 전장이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우방국으로 확대된 것이다. 향후 양상에 따라 한화의 다른 계열사로, HD현대와 삼성중공업 같은 다른 조선사로, 반도체 등 다른 산업 분야로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은 관세 전쟁을 다음달 10일까지 유예한 상태다. 시한이 다가오면서 신경전이 한층 거칠어졌다. 우리 기업에 부당한 여파가 미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지금 한국 기업이 처한 현실은 기업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예상되는 피해의 지원책을 미리 준비하면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양국 정부를 상대로 치밀한 외교적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중국 정부와 충분히 소통해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 입장을 관철해야 하며, 한·미 협력에 따른 우리 기업의 피해 방지에 나서도록 미국 정부를 움직여야 한다. 특히 한화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마스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제재를 당한 터라 그것을 풀어낼 책임이 미국 정부에도 있다. 이는 한·미 관세 협상의 돌파구를 만드는 명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의 외교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왔다.